성령의 감도하심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806 | 작성일 : 2005년 5월 9일
천주교 교리문답 365조목을 어린 시절 질리도록 외웠었다. 맨 처음 질문이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였고, 그 답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났느니라.”였다. 漢字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 말이 그 말 같고, 외워도, 외워도 조각난 지식들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고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었다. 聖洗, 聖體가 무엇인지. 漢字의 구별이 되었더라면 쉽게 이해될 일도 당시에는 구분이 되질 않아 애를 먹었다. 부모님은 자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천자문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암송했다. 부모님을 따라 주일을 지내는 훈련을 받았고, 성경말씀을 듣고, 기도를 했다. 부모님은 자녀들 손에 봉헌금을 꼭꼭 챙겨주는 습관을 익혀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 근거해서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신앙은 부모들에 의해 훈련되어졌고 습관화되었고 마음속에 선한 힘이 되어 사제로 살게 만들어주었다. 그 어린 시절, 조각난 짧은 지식들은 마음속에서 내 자신의 善한 기초가 되었고 實在가 되었다. 아직 초라하기만 한 지식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처럼 마음에 자리 잡고 흩어져 뒹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조각난 지식들은 마음속에서 통합이 되어 實在的인 나를 만들어 주었고 이해와 응용으로 實際的인 것이 되어 나타났다. 마치 앙상한 뼈에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내 자신이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교육에 의하여 오랜 훈련과 습관에서 이루어 낸 결정의 모습이다. 학생임에도 책과 노트와 연필이 없고, 학업과 멀어진 학생들, 조금만 복잡해서 머리 쓸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즉시 답답하다고 짜증을 토로하는 학생들, 세상 편하게 살려고 요령을 찾는 학생들, 학년이 오르며 지식의 정도는 그 강도를 높이고 있는데, 기본 바탕이 없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교육의 포기는 성령님의 감도를 더욱 늦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요즘 靑白戰이 한창이다. 청백전이란 그 옛날 초등학교에서 청군과 백군 사이의 운동놀이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취직할 곳이 없어 백수로 지내는데 취업 전쟁을 치른다는 略語로 쓰인다. 현실이 이럴진대 잠꼬대 같은 행동들만 하고 있으니 현실감이 너무 없어 보인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마음 안에 좋은 훈련과 습관들이 없었던 듯하다. 사람은 부모와 교사가 교육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셨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조각난 지식들을 들려 주셨고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결정적 때가 오자 그들은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明悟가 열려 감동하기 시작했다. 그분께서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자 제자들! 은 도대체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근심에 쌓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이 변하여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의 감도를 받은 제자들은 자신을 온전히 버리고 하느님과 신도들로 향했다. 복음의 증인, 부활의 중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가정에서 잘못 길들여지고 교육의 부재에서 자기 맘대로 길들여진 학생들을 보며 부모와 교사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해본다. 조각난 지식들도, 좋은 훈련들과 형성된 좋은 습관들은 인간바탕을 마련해 준다. 마음의 바탕을 튼튼히 이루어 갈 때만이 성령의 감도는 더욱 빨라짐을 발견한다. 이미 많은 것들이 고정화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몇 갑절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