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세요.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388 | 작성일 : 2005년 7월 8일
미사가 시작된다. 주례 사제가 입장하고 입당성가로 성당이 떠나간다. 성호경과 함께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라며 서로 인사를 정답게 나누었다. 하느님께 올리는 지향기도가 끝나고 모두들 착석했다. 조용히 귀를 열고 말씀의 전례가 이어지고 이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속마음을 헤아리는 중요한 시간이 왔다. 그런데 요즘은 몸만 와 있는지 사람들이 아이들처럼 옆 친구와 장난치고 떠드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신부님이 복음을 들려줄 시간인데 중단하고는 “입당송부터 다시 하세요.” 라고 주문을 한다. 전례 협조자가 귀를 의심한 듯 당황하며 아이들에게 입당성가를 다시 하도록 한다. 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강론을 하다말고 또 다시 “입당송부터 다시 하세요.” 라고 사제는 말한다. 벌써 미사가 끝날 시간인데도 계속해서 처음부터 미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미사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미사를 마칠 수가 있었다. 휴대폰의 휴(携)자도 모르는 어른들, 문자메시지를 자녀한테 어렵게 배워 남편에게 문자를 날려보지만 ‘여보 사랑해’를 ‘여보, 사망해’라고 전송했다는데 아무리 해도 지금의 어린이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수업 시간인데도 틈만 나면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쏟아내는 각종정보를 소화해내며, MP3로 귀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발을 굴러야 제대로 공부가 잘 된다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속성이 달라져 미사 시간이 그렇게 난장이 되고 있는데도 별 대책이 없다.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고, 자판기에서 수시로 다양한 캔 음료를 즐기며, 각종 소음 속에 살면서도 소음이라는 느낌을 갖지 못한 채 큰 소리로 말하고 떠들며 사는 아이들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제멋대로 길들여졌다며 골칫거리로 여기고 버릇없다고 비난한다. 미사 시간에 사제는 거듭 “또 다시 하세요.”라고 말하며 아무리 강제성을 띠어보지만 얼마 안 가서 곧 효력을 잃고 실망한다.
언젠가 교육박람회에서 교육에 관계된 기기를 보면서 다양한 기기를 통해 한 순간에 많은 작업을 해내며 흥미롭게 수업 내용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중력과 그들의 집중력은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LG 프로젝트 평면화상의 처리 작업에 놀랐고, 컴퓨터를 통한 각종 관련 기기들과 인터넷과의 접촉, 각종 정보수집과 재편집을 통한 학습 동영상 자료, 칠판과 백묵이 필요 없는 바탕화면 등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수업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고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시 하세요.”라고 하는 반복되는 말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아이들의 의식도 변하는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전법으로 아이들에게 겁만 주어서야 되겠는가? 어린이들이 초롱초롱한 모습을 하고 미사를 경건하면서도 흥미롭고 신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제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면서 떠들어대는 아이들한테만 억지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본당 신부들이 신자들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과제이다. 교구 청소년 대회가 다가온다.
언젠가 교육박람회에서 교육에 관계된 기기를 보면서 다양한 기기를 통해 한 순간에 많은 작업을 해내며 흥미롭게 수업 내용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중력과 그들의 집중력은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LG 프로젝트 평면화상의 처리 작업에 놀랐고, 컴퓨터를 통한 각종 관련 기기들과 인터넷과의 접촉, 각종 정보수집과 재편집을 통한 학습 동영상 자료, 칠판과 백묵이 필요 없는 바탕화면 등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수업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고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시 하세요.”라고 하는 반복되는 말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아이들의 의식도 변하는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전법으로 아이들에게 겁만 주어서야 되겠는가? 어린이들이 초롱초롱한 모습을 하고 미사를 경건하면서도 흥미롭고 신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제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면서 떠들어대는 아이들한테만 억지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본당 신부들이 신자들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과제이다. 교구 청소년 대회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