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 불혹인데(四十而不惑)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22 | 작성일 : 2005년 8월 13일

‘마흔 살에 事理에 疑惑하지 않다.’ 즉, 아는 것이 분명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自立하였고, 마흔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 쉰 살에 天命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가 되었으며,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쫒아도 법도에 넘지를 않았다(논어 위정 제2편)는 말이다.
 한번 주어진 인생이다. 한번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잘 살아야 할 텐데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언제 철이 들려는지 걱정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산다고 대답한다. 적당히, 편하게, 요령껏, 아무 목표도, 노력도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본다.
 얼마 전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져 많은 동료들이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나는 군에 간 제자들에게 충실하라고 이르며 농담으로 “수류탄 던지려면 혼자 죽고, 내무반에 던지지는 말라”라고 한마디 한다. 원인 없는 일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 원인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도 알아야 한다. 자신을 훌륭하게 키워내지 못한 연약함이 남에게 해가 되는 때가 있다. 청소년 시절은 그것을 모르고 지낸다. 부정적인 사고를 키워가다가 그 간격이 점차 증대되면 남을 원망하고 잘못을 돌린다.
 공부 열심히 하고, 뜻을 세우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하기도 했다. 허송세월 훌쩍 지나버린 자신은 이룬 것이 하나도 없이 되어 있다. 원망이 시작된다. “아버지! 그 때 저를 때려서라도 바로 세워주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거세게 반항하며 자신을 반성치 않은 이가 나이  40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 학생을 제적 처리하며 1년 후에 다시 복학하라고 했었다. 지금 용서를 해 준다면 남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인생의 보람이 10년, 20년 더 늦을 수 있지만, 1년의 반성의 사간은 좋은 거름이 될 거라고 조언하였다. 관심과 사랑을 갖고 함께 살아가자는 말을 했더니 받아들였다. 시시하게 레스토랑에서 써빙하고, 삽겹살 집에서 도우미를 하며 돈 몇 푼 버는 청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과 최선을 다해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라고 일러 주었다. 어머니는 그 제언을 겸허히 받아들였고 학생도 따라서 이에 동의하였다. 용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용서받기에 합당한 보속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내일을 훌륭히 키워가는 힘이다. 
 패륜아, 흉악범들을 보면 아무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한다. 세상이 왜 지지를 하지 않겠는가? 목표 없이 허송세월 하다가 이룬 것 하나도 없게 되자 세상을 비관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 잘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면 한다. 내 제자들은 나이 40이 되면 공자님 말씀대로 사리에 분명하게 말하고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