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잘 먹어요.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56 | 작성일 : 200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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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아침미사를 참례하는 학생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한 달 동안 미사에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각오가 새로워진다. 예전 같으면 아침밥보다는 무한대의 잠을 더 선택했는데 전교생이 아침식사를 하는 걸 보면 놀라운 발전이다. 학생들이 하느님과 함께 아침을 열고,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살맛이 난다. 그렇게 뿜어내던 담배연기도, 할 일 없어 서성이며 행하던 무단 외출도, 물리적, 언어적 폭력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강의실은 활기로 넘쳐난다. 수업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하품을 하다가 머리 박고 자던 학생들도 이젠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방과 후에 도서실, 넘.사.넘.끼., 그리고 학사실과 각 교과실에서는 특기적성교육이 이루어지고, 동아리 활동까지 더해져 학교는 활기로 넘쳐난다. 교과실은 웃음이 터지고 수업 시간에 작업한 흔적들이 덕지덕지 벽면에 붙어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그들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동하곤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학생회 활동도 달라졌다. 그들은 선배들의 잘 못을 알고 있고, 졸업한 선배들과는 분명히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SPAN><FONT face=돋움체>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그들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동인(動因)을 제공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선생님들의 몫이다. 나도 수업을 일주일에 4시간씩 하고 있다. 가르치는 과목은 1,2학년 철학이다. 나는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 주일에 한 번씩 수업시간을 통해 볼 수 있어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좋은 동인(動因)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나는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학생 자신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는 잘 못된 마음과, 그로인하여 노력 없이 즐거움을 찾으려는 행동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잘 못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하고, 그 부족함을 알게 한 연후에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 잘 못을 알게 되고 조금씩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을 하고 공감의 뜻으로 좋은 행동들을 보이는 것이다. 많은 경우 어른들은 우격다짐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지 않고 배우기를 강요할 뿐이다. 이렇게 어른들의 강요에 학생들은 짜증 낼 뿐이다. 모든 청소년들은 재능이 있고 끼가 있는 가능태들이다. 인간 모두는 하느님이 지어 만드셨고 존중받아야할 귀한 존재들이다. 학생들이 올바른 인생관과 너른 세계관을 갖으며 신명나게 현재를 살아가도록 돕는 것은 분명 선생님들의 몫이다.</FONT>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아침미사를 참례하는 학생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한 달 동안 미사에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각오가 새로워진다. 예전 같으면 아침밥보다는 무한대의 잠을 더 선택했는데 전교생이 아침식사를 하는 걸 보면 놀라운 발전이다. 학생들이 하느님과 함께 아침을 열고,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살맛이 난다. 그렇게 뿜어내던 담배연기도, 할 일 없어 서성이며 행하던 무단 외출도, 물리적, 언어적 폭력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강의실은 활기로 넘쳐난다. 수업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하품을 하다가 머리 박고 자던 학생들도 이젠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방과 후에 도서실, 넘.사.넘.끼., 그리고 학사실과 각 교과실에서는 특기적성교육이 이루어지고, 동아리 활동까지 더해져 학교는 활기로 넘쳐난다. 교과실은 웃음이 터지고 수업 시간에 작업한 흔적들이 덕지덕지 벽면에 붙어 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그들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동하곤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학생회 활동도 달라졌다. 그들은 선배들의 잘 못을 알고 있고, 졸업한 선배들과는 분명히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FON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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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그들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동인(動因)을 제공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선생님들의 몫이다. 나도 수업을 일주일에 4시간씩 하고 있다. 가르치는 과목은 1,2학년 철학이다. 나는 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한 주일에 한 번씩 수업시간을 통해 볼 수 있어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좋은 동인(動因)을 불어넣기 위함이다. 나는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학생 자신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는 잘 못된 마음과, 그로인하여 노력 없이 즐거움을 찾으려는 행동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잘 못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하고, 그 부족함을 알게 한 연후에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 잘 못을 알게 되고 조금씩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을 하고 공감의 뜻으로 좋은 행동들을 보이는 것이다. 많은 경우 어른들은 우격다짐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지 않고 배우기를 강요할 뿐이다. 이렇게 어른들의 강요에 학생들은 짜증 낼 뿐이다. 모든 청소년들은 재능이 있고 끼가 있는 가능태들이다. 인간 모두는 하느님이 지어 만드셨고 존중받아야할 귀한 존재들이다. 학생들이 올바른 인생관과 너른 세계관을 갖으며 신명나게 현재를 살아가도록 돕는 것은 분명 선생님들의 몫이다.</FONT> </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