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 이야기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07 | 작성일 : 2004년 12월 15일
전국을 흔들어 댄 수능 부정,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시. 도 교육감들이 오랜만에 교육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늘 그랬듯이 인생은 ‘수능으로 결판’ 나기 때문에 학교, 부모, 학생이 공모해서 인성교육을 다 죽여버린 토양 위에 부패의 냄새가 피어날 때에야 비로소 본질에 접근한다고 하는 것 같아 아쉽다. 얼마 전에 유명회사의 불량만두가 우리 식단을 위협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온통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사회적 부정행위를 근본적으로 바로 잡지는 못한다. 이번 우리 교육의 심각한 사태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될 것이다. 러셀은 그의 ‘자녀교육론’에서 성격교육은 태어나서 12개월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개 6세 이전에 어느 정도 성격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라는 말이 있다. 성격이 일단 형성되면 어떤 노력을 하여도 변화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올바른 성격교육이 이루어진 후 지적인 교육을 해도 부족한데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부모들이 일방적으로 지적교육만을 중요시해 자라나는 자녀들을 진흙덩이로 몰아넣고 있다. 부모들이 구식방법으로 실용적 결과만을 다그쳐 자녀들을 강제한 결과 자녀의 성격은 왜곡되어, 마침내 양심을 버리며 잘못된 현실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구식의 교육은 강제만 있고 자유는 없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정의가 있을 수 없다. 언제 누가 자유 속에서 스스로 정의를 선택하도록 가르치고 본보기가 되어주었는가? 인성교육의 기본이며 중심인 성격교육은 아예 땅에 묻어두었다. 도덕, 윤리, 철학을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가 쇠퇴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직 지식인조차도 그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인간다운 인간 만들기!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그 좋은 토양이 있은 후에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질과 적성 찾기 작업으로 적절한 지적교육을 하여 올바른 사회인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련의 심각한 사태들은 성격교육을 도외시하고 지적교육에만 급급하여 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신앙교육은 액세서리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신앙교육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만나며 인간의 내면을 풍요롭게 가꾸는 인테리어 작업인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기준은 대화 없이, 가르침 없이 공허한 이론으로 자녀들에게 전수된다. 실천 없는 궤변의 껍데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결국 자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입만 살아 움직인다.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절대성의 가치를 모르고 자라난다. 상대적인 것이 진리라고 우기면서 제멋대로 행동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실용적 결과를 위해서 무엇이든 선택하는 아이들이 된다. 기본 바탕이, 정의와 사랑이 꽃피지 못하는 메마른 땅과 사막을 만들어낸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하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모르겠는데요.’이다. 잘못을 하고도 언제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따져 보아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다 함께 희망의 교육을 하자. 다 무너져 내려도 하느님을 향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을 때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든다. 이제부터라도 인성교육의 기본인 성격교육 형성을 태어나서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습관, 올바른 도덕적 훈련이 되어있을 때 지적인 교육이 빛을 발할 것이다.
인간다운 인간 만들기!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그 좋은 토양이 있은 후에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질과 적성 찾기 작업으로 적절한 지적교육을 하여 올바른 사회인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련의 심각한 사태들은 성격교육을 도외시하고 지적교육에만 급급하여 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신앙교육은 액세서리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신앙교육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을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만나며 인간의 내면을 풍요롭게 가꾸는 인테리어 작업인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기준은 대화 없이, 가르침 없이 공허한 이론으로 자녀들에게 전수된다. 실천 없는 궤변의 껍데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결국 자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 입만 살아 움직인다.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절대성의 가치를 모르고 자라난다. 상대적인 것이 진리라고 우기면서 제멋대로 행동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실용적 결과를 위해서 무엇이든 선택하는 아이들이 된다. 기본 바탕이, 정의와 사랑이 꽃피지 못하는 메마른 땅과 사막을 만들어낸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하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모르겠는데요.’이다. 잘못을 하고도 언제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따져 보아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다 함께 희망의 교육을 하자. 다 무너져 내려도 하느님을 향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을 때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든다. 이제부터라도 인성교육의 기본인 성격교육 형성을 태어나서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습관, 올바른 도덕적 훈련이 되어있을 때 지적인 교육이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