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배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54 | 작성일 : 2005년 4월 21일
부활의 기쁨을 만나러 남녘으로 향했는데 좋은 분들로 인해 통영과 거제의 여러 도서(島嶼)들도 만나게 되면서 향기로운 봄기운을 만끽했다. 아직도 해변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태풍 매미호의 상처들을 보며 태풍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을 맞이한 배는 150톤이 넘는 큰 업무용 배였다. 선장, 기관장, 갑판원까지 우리 일행을 기다렸고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맞이해주었다. 출항하여 찾아 간 곳은 매물도. 소 매물도(小 每勿島)였다. 매물도에 올라 다솔산장이라는 허름한 찻집으로 안내되었다. TV에 방영될 만큼 정감 있는 분위기가 찻집에서 묻어났고 국화향 담은 찻잔에서 주인의 넓은 마음이 보였다. 멀리 가까이 도서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이 되어 또 다른 봄을 받아들인다. 섬 정상에 폐교가 있다기에 혹 섬마을 선생이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거기에는 주인을 잃은 동백꽃만이 외롭게 피어있고, 낮선 불청객들은 동심을 떠 올리며 빛바랜 앨범을 들추어내듯 서성일 뿐이었다. 마음을 고정하니 시장 끼가 동하였다. 점심때다. 선실에는 그분들이 준비한 특별 점심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푸짐하고 맛깔스런 회감, 깔끔한 탕과 잘 숙성된 매실주가 군침을 돌게 했다. 파도의 출렁임 속에 맛에 취하였다. 하루 종일 섬을 돌아보고는 통영의 8경 중 하나인 달아 공원에서 노을이 고운 석양을 바라보았다. 저녁 식사는 6개월 후에 선장이 된다는 분과 무너져가는 집에서 하였다. 그 분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28년 동안 함께 지내온 지금 선장의 정년을 아쉬워하며 참 훌륭한 분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매미 호 태풍이 있을 때 그 파고가 엄청났습니다. 작은 배들은 한적한 포구로 대피를 하고 이렇게 큰 배들은 넓은 바다에 남아 태풍을 맞이해야 합니다. 태풍이 있는 날이면 선장은 모든 직원들을 독려하고 사투를 벌이며 배를 지켜야 합니다. 선장은 태풍이 두려워 몸을 피해 숨든지 아니면 바람을 맞서기 위해 배로 가야만 합니다. 저희 선장님은 늘 후자를 선택하고는 태풍과 맞섭니다. 배의 중심에 엥카를 박고 배의 선수(船首)와 선미(船尾) 위치를 바람 방향으로 일직선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강풍 앞에서는 배가 바람에 전신을 얻어맞아 요동을 치고, 이때 중심을 잃으면 배는 사정없이 떠밀려가게 됩니다. 선장은 계속해서 앵커 위치를 바꾸어 중심을 잡고는 배의 안전을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배를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바람이 잘 때까지 죽음과 함께 맞서는 것이지요. 상황이 끝나면 든든한 선장의 자세를 보게 되고, 직원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선장은 덕이 있어야 하고, 위험에 따르는 결단력도 필요한데 숱한 날들을 훌륭하게 마감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매미 호 태풍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 선장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저도 배워 알게 되었지요. 저는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분이 떠나면 제가 자동승급이 되어 선장이 됩니다. 선장이 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저는 덕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 저에게는 지금의 선장처럼 덕도 없으며 태풍과 직면해서 싸울 결단력도 부족합니다. 저는 불교 신자이지만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부탁하고 있었다. 승진의 기쁨 속에는 앞으로의 중책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하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잘 하실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 분과 함께 하며 말씀을 들을 때, 나는 뜨거운 감동을 느꼈으며, 식탁에서 빵을 뗄 떼야 비로소 그분이 누구인줄을 알아보게 되었다.”(루가24,25)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엠마오로 가던 여정에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행복해졌고 또 활력 있게 살아갈 가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