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없는 교육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2,918 | 작성일 : 2005년 10월 21일

종합적 사고가 부족한 학생들은 늘 질벅인다. 교사가 학생들의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려고 하지만 학생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생들을 방임이 아닌 훈육과 통제를 통해서 변화를 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는 잘 먹히질 않는다. 학생들은 그 동안 공부 하나 때문에 가정에서 상전 대접을 받아왔기에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해도 듣지 않고 어른 앞에서도 예의 없이 안하무인이며 ‘예’라고 시원하게 대답하며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어른들이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오히려 그 반감으로 관계만 악화될 뿐이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었으면 이미 변화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교사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그 역할과 책임을 놓지 않는다. 교육함에 있어서 교사는 자신의 학생들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옛날의 학생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했기에 좋은 어른을 보면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나가며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으로부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른의 가치를 모르고 기고만장한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겸손한 마음을 하고 배웠는데, 지금은 선생님 외에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서인지 때론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은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아마도 청년의 특권처럼 옛날도 그랬을 것이지만 어쨌든 과거보다는 더욱 교육하기 힘이 든다.
 왜 힘이 들까? 기본이 제대로 서면 전체도 훌륭할 텐데 그렇질 못한다. 전체를 훌륭히 만들기에는 어려서부터 아주 중요한 기본과정을 놓쳐버린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어려운 기본동작을 배우지 않았다. 단지 상전 대접만 받아왔기에 무의식적으로 대책 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에도 기본기를 철저히 배워야 한다. 기본기가 없으면 동작도 밉고 무식해서 예술성을 찾을 수가 없다. 인간교육에 필요한 기본을 가르치지 않았기에 중간지점에서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부친다. 부모의 삶을 통한 자녀들의 배움이 부족한 상태에서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학교에서 교사가 일방적인 통제를 하면 좋은 결과를 얻겠지 하고 기대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중심 개념을 익히는 기본기가 없는데 일방적인 강제는 더욱 상황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부모의 훈육이 없는 식사예절은 결과적으로 자녀가 밥을 먹을 때, 흘리고, 훌쩍이며 쩝쩝거리고, 귀한 음식을 마구 버리게 된다. 그런 오랜 습관을 지금에 와서 지적한다고 나아질 리가 없다. 그 옛날에는 일관된 삶이 있었다. 새벽 첫닭이 울면 일어나서 얼음을 깨고 세수하고 머리 빗질하여, 예복을 가려 입고, 부모님에게 문안 인사드리고 예를 표하고, 외출 시는 자식의 도리로 동향을 부모님에게 여쭙고 했다. 그것은 삶 속에서의 인간교육이었다. 그런데 교사가 기본을 배우지 않았을 뿐더러 그 기본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학생들이 세수도 않고 우르르 내려와서 눈꼽 띠며 아침을 당당히 먹곤 한다. 어쨌든 지나온 과정 속에 공부 때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대충 넘기며 기본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이 자랐다. 이렇게 자라면서 굳어진 상태에서 고등학교의 인성교육은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중심을 갖고 살아야 흔들리지 않는데 중심이 없으니 마구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교육하기 위해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