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귀가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486 | 작성일 : 2007년 9월 4일

학기 초에 학생들이 부적응해서 무단귀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학교는 그 학생에게, ‘왜 무단귀가를 했는가?’ 에 대하여 따져 묻지 않는다. 단지 내일 수업에 늦지 않게 돌아 오라는 부탁만은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 그 학생은 다음 날 학교로 돌아 왔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생활을 한다. 돌아 온 학생의 일을 놓고 담임교사는 그 학생이 학교에 다시 돌아 왔다는 안도감을 갖고 내심 반가워 했을 뿐이다.
 또 새 학기를 맞이했고 모두들 건강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식탁에서 대화 중에 그 학생의 이야기가 도마에 올랐다. “그 학생 잘 지내는가?” 하는 질문에 한 선생님이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하며 그 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길 전해주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학생은 일반학교 선생님이라면 자기를 불러 “왜 네 맘대로야. 그것도 무단으로. 그래도 되는 거니?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사무적이고 의례적인 말을 했을 텐데, 여기는 확실히 선생님들이 다르다고 했다. “학교는 저를 야단 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교에 들어오라는 한마디 선생님의 부탁에 놀랐습니다. 만일 무단 귀가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우격다짐으로 저를 대했다면, 저는 지금 이 학교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덕분인지 학생은 차분한 성격에 성적도 좋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지낸다.
 아직 한 학생이 학교로 돌아 오지 않고 있다. 부모는 자녀의 자퇴를 결심한 듯하다. 끝내 자퇴원을 쓰고 돌아갔다지만 학교는 결재를 유보하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학생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공동체생활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 학생은 귀가를 선택하고 있지만 미래를 위한 선택은 분명히 아닌 것이다. 학교를 그만 둔다면 사회성은 어떻게 배울 것인가. 분명 이는 퇴행적인 행위이다. 학생은 짧은 생각으로 삶의 도피처를 찾지만, 부모와 교사는 중심을 잡고 말려야 한다.     그 흔해 빠진 검정고시를 선택했던 아이들도 모두들 합격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학생들이 지금 답답하다고 해서 놓아 버릴 때 이를 허락한다면, 이는 어른들이 잘못하는 것이다. 학교가 학생에게 좀더 여유를 갖게 하며 자신을 극복하고 당당히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리이다. 자녀를 생각해주는 학교의 마음이 부모에게 전달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있다. 앞서 제시한 건강한 학생처럼 이 학생에게서 환한 얼굴을 보고 싶다. 이를 위해 오늘도 마음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