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눂이 교육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49 | 작성일 : 2008년 6월 23일

                              눈높이 교육

  전교생이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날이다. 대통고속도로를 내리달려 지리산 가까이 오니, 하늘빛이 화난 얼굴처럼 캄캄해지더니 빗줄기를 쏟아 부을 듯 험상궂다. 그렇지 않아도 장마소식에 마음깨나 긴장이 되었는데, 시작부터 산행을 훼방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산행을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음, 과연 시작했구나.’ 하며 마음이 편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노고단, 로터리, 치밭목 1차 예정 대피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선생님들로부터 왔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굵은 빗줄기를 밤새도록 쏟아내고 있으니 걱정이 또 다시 일었다. 금방 퍼부은 빗물은 계곡으로 내리 달리며 굉음을 내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거침없이 쏟아 붓는 빗줄기는 다음 날도 온 종일 퍼붓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아쉽지만 안전지대로 하산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려 학생들을 안전하게 하산시킨 선생님들이 고마웠다.
  어제부터 연락이 두절된 조가 하나 있어, 마음조리며 기다렸는데, 아침이 되자 “여기 장터목 대피소입니다.” 라며 연락이 왔다. 1차 예정 대피소인 치밭목 대피소에서 하산한 것이 아나라, 천왕봉을 넘어 장터목 대피소까지 강행한 것이다. 그럴 수가.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담당 선생님은 새벽 세시에 학생들을 깨우고는 굵은 빗줄기와 맞서게 하고 천왕봉을 올라 장터목대피소에 왔던 것이었다. 일명 양업에서는 이 조를 ‘죽음의 조’라 이름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했다. 우중에 돌발 사고라도 나면 어찌했을까? 다행이 그들 일행은 백무동 방향으로 무사히 하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상황이 끝났다.
  나는 그들이 있다는 장소로 급히 찾아 나섰다. 학생들이 한 숨을 자고 일어났는지 얼굴엔 피곤기가 사라지고 아주 밝아 보였다. 선생님은 고생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신부님, 이놈들이 등산복 대신 반바지, 티셔츠 차림, 등산화 대신에 운동화를  착용했고, 산속에서 저체온에 챙겨 입을 여벌옷 한점 없이 등산을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한심스런 놈들이지요!” 선생님은 연신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2.3학년생들은 경험이 있어 모두를 완벽하게 준비를 했는데, 1학년들 중 몇이 아무 준비도 안했다며, “학부모도 책임이 크지요. 어떻게 자녀들을 그렇게 보낼 수가 있어요. 한심합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등산도 수준별 교육이 필요하지요. 그 놈들은 등산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들입니다. 산행을 산책정도로 여기고 간편한 복장차림을 하고 온 것은 그들의 수준이지요. 백두대간을 종주하신 선생님은 전문산악인이지만 그 놈들은 왕초보 산행이기에 무지에 가깝지요. 그들에게 기본부터 자상하게 일러 주어야합니다. 대안학교 선생님은 문제를 탓하면 아니 되고 문제를 풀어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언제나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겁니다. 학생의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비난하면 그들은 산을 싫어하게 되겠지만, 자상하게 잘못을 일러주면 그들은 산에 대한 욕구가 생겨날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에 맞는 산행을 지도해야지 선생님의 눈높이로 강행하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그 때는 학생의 책임이 아니라 선생님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온 그 학생에게 “산행이 어땠었니?”라고 물었다. 학생은 “네, 무척 힘들었어요. 등산을 산책정도로 여겼습니다. 가벼운 운동화가 산행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빗길에 자주 미끄러지고, 온 몸이 비에 젖을 때면 저체온으로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니 그제야 여벌옷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겁이 났습니다. 세찬 빗줄기가 뺨을 때리는데 얼마나 아픈지.” 라고 말을 잇는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이다. 선생님들은 그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교육하는 것, 이것이 교사가 해야 할 산교육이다.(2008년 7월1일. 윤병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