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15 | 작성일 : 2008년 7월 18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는 성장을 위한 조건이 허락되면 언제나 뿌리를 내리고 예쁜 생명의 촉을 틔운다. 씨가 땅에 떨어져 성장을 시작하면 그 생명력은 아주 미미하게 시작되는 것 같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몰라보게 생명체가 자라난다. 그 생명력은 아스팔트 포장을 뚫기도 하고, 바위 틈사이로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렇게 성장을 시작한 생명체는 많은 열매를 맺으려 시도한다. 생명력은 잎 끝과 뿌리에서 작용하며 그 힘은 힘세고, 날카롭게 작용을 하지만 열매는 탐스럽고 둥근 모양을 드러낸다. 성장을 거듭한 생명체는 성숙한 모습으로 열매 맺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로 드러난다.”(마태.13.8)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생명체가 땅의 조건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는데 미구에 갖게 될 영광의 열매를 위하여 힘껏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식물은 공식대로 살아가며 자기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는 공식은 있지만 자유의지가 있기에 제 멋대로 이거나 정도를 걸어가는 등의 다양한 방법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결실은 식물은 우리에게 영양소를, 동물은 우리에게 고기 감을 제공한다.
 인간아! 왜 사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이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그 답이 다르게 나타난다. 동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볼 것이냐,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현실안주형이냐?, 고통을 감내하며 과정을 충실히 하며 살아가는 미래 도전 형이냐? 에 따라 답의 질도 다르게 나타난다. 신앙인들의 답은 하느님 나라건설을 위한 여정이라고 답할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답은 미구에 드러날 자신과 이웃을 위한 영광을 위한 여정이라고 답할 것이다.
 씨는 열매를 위해서 존재한다. 예수님께서 각자의 마음의 밭에 하느님의 뜻이 담긴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 분께서 우리와 함께 이루시려는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 건설의 여정은 순탄치 않은 과정이다. 식물이 자연과 부딪히며 자기 생명을 이루어가듯이 사람도 그 여정 안에 발생하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기에 고통을 탓하면 아니된다. 그  이유는 “그 고난은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로마.8.18)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잘 드러난다
 자유로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당장은 즐겁고 재미나는 일에 푹 빠져 든다. 이는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고통 없이 세월을 보내며 즐기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모든 생명은 고통에 직면하며 영광을 이루어가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만일 그 일을 소홀이 한다면 미구에 비참함이라는 쭉정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인생살이를 경험했기에 그 여정을 아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서 일단 즐겨보자는 심사이다. 만일 어른들이 지닌 종합적인 사고를 학생들이 좀더 빨리 알아챈다면 그 열매는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고통은 미구의 영광을 예견하는 동력임을 안다면, 그 안에 풍부한 열매를 기다릴 법 하다. 자녀들의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아니길 바란다. 스스로가 좋은 땅을 마련해 가며 복음의 씨가 자라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려 현실과 미래를 적절히 연결하여 영광을 예견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