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동 아이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20 | 작성일 : 2008년 12월 17일

                                    광장동 아이들
 같은 초등학교 출신 3명이 양업고에 있다. 하나는 고등학생이지만 초딩이란 별명으로 왕따를 당해 이곳에 와 3년을 지내며 훌륭하게 성숙해 졸업을 했다. 꾸준히 행복한 미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두 번째는 일반고 1학년 중퇴하기까지 부모님에게 골치를 썩이던 학생이었지만 그런 모습은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되어버려 입학 초부터 언제나 학생들의 중심에 서 있는 모범생으로 지내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조숙하게도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하여 남보다 1년 일찍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현재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오늘은 2학년에 재학 중인 검정고시 출신인 여학생의 이야기를 하련다. 노래를 하고 싶어 예술중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학교가 싫은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그런 학교를 왜 다녀야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중 1때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단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고, 남과 다르게 튀고 싶었습니다. 개성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남들 따라 가는 학교가 아니라 제가 간절히 다니고 싶은 학교를 더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퇴를 했을 때 부모님은, “네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하며 저를 믿어주었습니다.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볼 때까지 오르지 집에만 처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사춘기였던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시비 걸고 고집 부리고, 예민해져서 학교가기가 싫어졌습니다. 현재 저의 언니는 고3인데 저와 취향이 너무 다릅니다. 도서실에서만 지내는, 단정하고 모범 형이어서 저와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저는 연예인처럼 톡톡 튑니다. 그러던 저는 대안학교 소식을 접했습니다. 초딩이란 별명을 가진 오빠가 대안학교에 다녀 훌륭하게 변했음을 보고는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양고에 와서 저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배웠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배웠다고 할까요. 전에는 제멋대로였으니까요. 양고가 제일 맘에 들었던 기억은 자연친화적인 학교 환경이었어요. 또 양고의 친구들은 다양한 색깔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전국에서 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저의 부족한 점을 친구들로부터 배워갔어요. 큰 학교는 싫은 사람이 있으면 피해갈 수 있지만 양고는 학생 숫자가 적어 하루에도 수십 번 만나니 친구가 싫어도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싫어도 만나고 좋아도 만나고…. 그러다 보니 친구의 뼈 속까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친구들의 단점을 이해해가는 것도 좋았습니다.”  “초딩 별명의 오빠가 어떻게 변했는데?”라는 질문에, “그 오빠는 중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제 친구인 동생한테 풀고 매일 싸움질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양고에 와서는 사람대하는 것도 너무 달라졌고, 동생을 인격체로 대하는 모습이 ‘훌륭한 변화’라는 강한 인상 주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오빠는 왕따를 당해 많이 우울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날인가. 오빠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음을 보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철이 들어간다고 할까요. 제자리 잡아가니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1학년 2학기가 지나고 있을 무렵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발성이었습니다. 학교 도서실에서 스스로 밤늦게 진짜 무섭게 공부합니다. 후회하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또 현역 오빠 영향도 컷구요. 정말 모범적으로 전교생을 리드했으니까요. 하~하”
 학생과 면담 하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이 학생들 셋이서 사는 곳은 서울의 ‘광장동’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광장동 아이들을 좋아한다. 미구(未久)에 이 광장동 아이들은 양업을 빛낼 얼굴들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가 쓴 대안학교 이야기 「창가의 토토」처럼  나는 「광장동 아이들」을 책으로 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