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80 | 작성일 : 2008년 12월 30일

                            지난 성탄절에
  한 분이 뇌종양으로 벌써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암 병동에서 벌써 두 번째 만남이다. 강사비를 받아 어렵게 가계를 꾸려가느라 생계도 어려운데 또 한 차례의 큰 수술로 가정경제가 마비되었다. 또 수술을 한다는 것이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에게 얼마나 큰 어둔 밤이었겠는가. 어두운 밤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는 그 가족들이 겪는 어두운 밤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음이 부유해서 행복한 마음을 간직한 한 학부형이 소식을 듣고 그 가족에게 큰 빛이 되어 주었다. 그 분은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가난한 자들의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연민의 정을 갖게 하지요.” 그 분은 그 환자에게 큰 금액을 쾌척해 주었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많은 성금을 보내주었다. 어둔 밤을 지내며 마음 조리던 가족들이 수술비도 거뜬히 해결되고, 환자는 예전처럼 건강한 환한 얼굴을 하고 행복하게 웃어 주었다. 나는 ‘구원이다, ‘해방이다.’ 라는 단어의 의미가 너무 거창해서 오히려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피상적으로 생각되던 ‘구원’과 ‘해방’의 의미가 감칠 맛나게 가까이 와 살아났다.
  환자를 방문하던 날, 그의 아내는 나에게 사랑의 편지를 손에 들려주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이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사랑이 그에게 복음이 되고 성탄절은 그 가족에게 “아기 예수님은 세상의 큰 빛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더욱 친밀하게 감지되었을 것이다. 은인들이 전해준 사랑은, 그 가족에게 구원의 큰 빛이 되었고 훈훈하고 따스한 성탄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의례적으로 성탄을 맞는 나에게도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더 없는 기쁨이었다.
  성탄절 준비로 학생들이 나를 찾았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 살피며 고해성사를 통해 성탄을 준비는 학생들의 마음이 순수하다. 속까지 다 들여다보는 마음을 하고 고백을 하는 모습이 예쁘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사랑을 소홀이 했습니다.” 구겨진 마음도 아닌데 학생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학생들에게 사죄경을 해주면서 정작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성탄이 맞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검색을 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 속 한번 제대로 들락거리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다. 이러다가 속빈 강정처럼 성탄을 맞이하면 어쩌나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울 것 같았다
  꿀 한 통 챙기고 아버지 신부님 찾아 나섰다. 은퇴하신 후 신부님 찾아 본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조용히 손수 식사를 준비하던 신부님이 불쑥 나타난 불청객에게 들켰나 쑥스런 표정을 지으신다. 얼른 꿀 선물로 내어놓고는 다짜고짜 성사를 보겠다고 말하자, 신부님은 준비가 안 되었다며 수단을 챙겨 입으시고 경본을 준비하고는 영대 챙겨 들고 나타나셔서 고해자 보다 먼저 무릎을 꿇으셨다. 사는 것이 다 죄라고 고백하는 할머니처럼 나도 사는 것 자체가 죄임을 새삼 알게 된다. 나도 나이가 제법 든 모양이다. 고해성사가 끝나고 신부님은,  “아기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내리는 이슬처럼 이 세상에 오셨어요. 조용한 마음을 하고 아기 예수님 바라보셔요. 우리들의 초심이 그랬으니까요.” 라고 훈계하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다.” 라는 현재형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더욱 구체적으로 살아났다. 그 날 나의 고해성사로 신부님이 손수 준비하여 드시려 했던 청국장은 이미 다 식어버려 죄송했지만, 그 덕분에 성탄날이 왜 그리 기쁜지 성탄 밤 미사에 “어두움을 걷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라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마음에 더욱 생생하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천사들의 노래 소리로 작은 경당에 가득 찼다.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도 방긋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