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첫영성체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73 | 작성일 : 2008년 12월 30일

                    한 학생의 첫영성체

  지난여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대회’는 세계 청소년의 신드롬 격인 베네딕도 16세 교황성하를 모시고 이루는 성대한 청소년의 축제이다. 우리 학생들 다수가 교황님을 뵈려 그 행사에 참여하였다. 학생들은 그 행사를 통해 세계인들과 만나면서 질 높은 문화를 보고 배웠을 것이다. 특히 유럽인들을 보면서 높은 가치와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배웠다고 했다. 행사 중 분실물 센터는 각종 분실물로 넘쳐 났고, 잃어버린 지갑이 주인을 맞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고 했다. 한 학생의 말이다. “유럽인들은 우리와 달리 남의 물건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유럽인들은 무엇이 달라도 달랐습니다. 우리 같으면 신앙인이라도 남의 잃어버린 지갑을 보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내 것으로 만들 텐데, 그들은 남의 물건에 손을 전혀 대지 않았습니다. 질적인 면에서 그들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8년 12월 23일, 학교에서는 6명의 학생들이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중에 규호는 아직 신자입문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첫영성체를 한 상태였다. 지난여름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성체를 영했기 때문이었다. 수녀님이 성체에 대하여 설명하고는 규호는 성체를 모시면 안 된다고 단단히 부탁도 했건만, 쏜살같이 제대 앞으로 나아가 첫 영성체를 하고 들어온 것이다. 성체를 영한 규호가 동료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말하는 것을 수녀님이 옆에서 들었던 것이다. 수녀님은 규호에게 꾸지람을 주며 나무랐다. 그러자 규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녀님, 제가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사제가 되고 싶어 꼭 예수님을 모시고 싶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규호가 그 날 예전 모습과 다르게 잘 닦아 신은 구두며,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며, 검정 양복이 잘 어울렸다고 한다. 그만한 준비와 열망으로 규호가 성체를 모셨다면 굳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규호의 예수님을 모시고 싶은 열망이 가상스럽다. 그런 규호가 지난 성탄절에 세례성사를 받은 것이다. 이제 마음껏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세례를 받던 날, 규호는 “그래 뵈도 네가 교황님으로부터 첫영성체 했는데” 하며 뻐기는 것 같았다. 그 열망하던 마음으로 성체를 영했으면 한다.
  09년 1월11일 주일은 ‘주님의 세례축일’이다. 세례성사의 제정자인신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우리들을 교회로 부르신다. 교회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 교회는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교회는 성모님께서 신앙의 응답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태어나게 한 것처럼 우리들은 세례를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고 성숙되어간다. 성체를 모시고 예수님의 삶을 쫒아 살도록 교회로 부르시는 성사가 ‘세례성사’이다. 세례성사가 성체성사를 이루는 시작의 성사라면 세례성사를 받은 이가 어떤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야 하는가를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지난여름 규호는 비록 비신자였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길 바랐다면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세례성사를 받고도 성체성사에 접근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성체를 영하는 빈껍데기 신자들 보다는 훨씬 낳지 않은가. 규호는 아직 신앙이 미숙하지만 세계성체대회에 있었던 그 열망은 신앙생활 안에서 살아 날 것이고 언젠가는  성체성사를 이루며 사는 작은 빛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지난 성탄절에 세례성사를 받은 규호는 첫 영성체의 기억을 떠올리며 더욱 성숙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실 것이라 여겨진다. 한 학생이 말했던 “유럽인들은 무엇이 달라도 달랐습니다.” 그런 일이 내적인 변화로 옮겨 와 질 높은 가치관과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미래의 사제 규호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