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 높은 나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54 | 작성일 : 2009년 2월 3일

삶의 질이 높은 나라

 광활한 목초지, 무리지어 풀을 뜯는 소와 양떼들, 하늘을 향해 성장하는 푸른 나무 숲, 청정한 하늘과 맑은 공기, 루비 사파이어처럼 옥 같은 아름다운 호수 빛, 강줄기를 따라 힘차게 토해내는 강물이 낭떠러지를 만나면 세찬 굉음을 지르며 떨어지는 폭포수…. 그러다 한가로운 공원에 천년 고목처럼 버티고 서있는 나무숲을 만났다. 숲 속 사이로 펼쳐진 너른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과 공놀이도 하며 여유를 즐겼다. 숲 속 사이로 새들과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모두들 주인처럼 생명이 푸르렀다. 가족들, 노부부들, 연인들, 자연 속에 동화되어 너도 친구, 나도 친구 숲 속은 온통 생명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의 동화된 아름다움을 ‘뉴질랜드’에서 보면서 오랜만에 여유로움에 푹 빠졌다.
 적응능력이 뛰어난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빨리 빨리, 성급한 성질이 며칠을 보내다가 어딜 가나 풍경이 꼭 같다고 금방 싫증 나 버릴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제법 여러 날을 다녔는데 친근감으로 다가와 지루하지 않다. 내가 시골에서 자란 탓이겠다. 여름이면 꼴망태가 터지도록 쇠꼴 베어 챙겨들고, 들판에서 송아지 풀 뜯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덕분인 것 같았다. 그 시절은 생명이면 모두가 친구 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았는데, 그런 환경이 익숙해서인가보다.
 오늘의 우리 상황도 교육환경을 닮았다.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듯 가축들도 돈버는 수단이 되어 너른 목초지 떠나 좁은 축사로 불려 들어갔다. 주인이 주는 밥만 먹으며 쾌적한 공간 없이 좁은 축사에서 먹고 똥 싸고 엉덩이 쇠똥 범벅되어 지내다가 어느 날 쇠고기 한 점 붙었다고 시장 구경을 하면 그만이다. 젖소는 우유 생산한답시고 좁아터진 축사에 수십 마리 가둬두고 겨우 내내 볏 집 건초 주워 먹고 인공사료 먹고 주인에게 끌려들어가 착유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래도록 그렇게 지내다보니 만성처럼 환경이 그런가 보다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천혜(天惠)의 자연이건만 우리들은 똑같은 자연을 보면서 이내 싫증을 내기도 한다. 아마 어린시절부터 한적함, 고요함, 여유로움, 넓음, 생명 가득한 자연과의 친밀감 등의 환경에 접해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머리 짜내며 사는 우리로서는 공장 하나 없는 농업국가인 뉴질랜드를 이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생명과 친숙함을 경험하지 못한 채 다만 지연을 파헤치며 경제 때문에 안달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괜히 북적대고, 시끄럽고, 좁아터진 아파트 숲에서 모래알처럼 바삐 흩어져 살다가 저녁이면 여유로움을 맛보려다가도 또 잠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현장으로 달려가는 습관이 그 여유로움마저도 금방 싫증을 나게 한 모양이다. 여유로움이 마치 사치처럼 보이고 돈 때문에 대학가고, 경쟁하고, 어쩌면 우리 삶도 좁은 축사에서 생존하려 질척이는 똥밭을 뒹굴며 삶을 살아가는 억척이어서인가 보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왜 사는지,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과 가치를 오르지 물질에 두고 사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지닌 양질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가 부럽고, 양질의 풀을 뜨는 소와 양 떼들의 여유로움이 부럽고, 사람도 숲 속에서 생명의 한 부분이라고 느껴지는 모습이 부러웠다. 국민소득이 증가해도 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모르는가? 행복은 돈이 아니라 그 수단으로 향유하는 여유로움이고, 고요함이며 한적함으로 생명 가득한 마음의 뿌듯함이다. 많은 나라에서 삶의 질을 배우러 뉴질랜드로 찾아온다.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 뉴질랜드, 그 나라는 나에게는 두고두고 환상적인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