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봉헌과 삶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03 | 작성일 : 2009년 2월 3일

생명의 봉헌과 삶

 사제가 되려면 신학교 생활 10년, 정회원의 수도자가 되려면 입회한 지 10년, 이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렇게 양성된 새 사제와 수도자들을 보고 싶어 많은 신자들은 매년 성품성사인 사제 수품식에, 주님의 봉헌축일(2월2일)에 행하는 수도회의 종신서원식에 함께한다. 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양성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사제수품식의 제단에 선 새 사제들, 종신서원 식에서 제단 앞에 선 봉헌된 수도자들을 바라본다. 잘 가꾸어진 흠 없이 다듬어진 아름다운 생명들이다. 제단에 봉헌되어 여타의 생명을 위해 살기로 작정된 제물들이다. 자신을 드높은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모든 생명이 양질의 성장과 성숙을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하느님의 사람들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착한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가능하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교육되어지고, 양육될 때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람들이 지닌 목적과 가치를 사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은 양질의 생명 관리자를 만남으로써 한 인간을 최고의 목적적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케 한다. 따라서 교육은 미성숙한 인간을 단계적 교육과정에 투입시켜 지식을 가르치고, 각 지식들을 인격과 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인간을 만들어간다. 이런 노력에 참여함을 ‘공부’라고 하며 공부를 함으로써 한 인간의 목적과 가치는 높아간다. 공부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단지 그 책임은 각자에게 유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부를 한 만큼 인간은 상위의 목적과 가치를 갖게 되고 성숙되어 가기에 결국 공부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
 내게 맡겨진 학생들의 생명을 드높이기 위해서 나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했다. 미성숙한 생명이 온전히 자라나 성숙하도록 봉헌된 내 자신이 푹 썩어야 한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겼다. 하느님의 사람이 된 것은 생명의 관리자로 나에게 맡겨진 생명을 드높여주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미성숙한 생명들, 그 생명을 만날 때마다 일일이 그들의 손을 잡으시며 “일어나라”(마르 5,41)라고 명령하신다. 나도 주님을 닮으려 그들을 향해 손을 잡아주며 “일어나라!”라고 말해주고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부자인 세 딸을 둔 부모님을 알고 있다. 그도 역시 가정을 위해 봉헌된 하느님의 사람이다. 아름다운 부부는 어느 날인가 넷째가 생겨났다며 자랑이었다. 넷째는 다름 아닌 양자를 입양한 것이었다. 엄마는 종신서원이 있던 날에 두 딸과 함께 입양한 아들을 데리고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엄마는 입양아에게 거룩함을 마음에 새겨주고 있는 것이다. 다섯 살 난 그 아이가 천진스럽고 환한 얼굴을 하며 뛰노는 모습에 나는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다. 봉헌의 삶을 사는 엄마는 그 어린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상위의 가치와 목적을 지닌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낼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의식이 있을 때마다 태어나는 하느님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엄마의 노력은 어린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어린 생명은 그 의식 안에 담겨진 사람들의 거룩함을 마음에 새기고 일반 아린이보다 더 크게 건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미구(未久)에 곧 보게 될 또 하나의 행복한 생명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