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아닌 어른으로 살기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70 | 작성일 : 2009년 3월 6일

                                                                     
                              성인이 아닌 어른으로 살기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의 처지에 서라, 그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으로 들어가라,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고 자신과 남의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하라, 자신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남에게 행하라.’ 는 의미일 것입니다. 결국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12,39)는 예수님의 말씀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은 이 말씀을 ‘황금률’로 여깁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우리들도 이 말씀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성숙함의 의미로)이 되지 못해 성인(미성숙함의 의미로)으로 살아가기에 삶의 현장에서 파열음을 내고 시끄럽습니다. 새 봄이 시작되는 3, 4월의 곳곳은 일기불순처럼 변화무쌍해서 모든 생명이 제 자리를 잡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인들은 그런대로 적응해 가지만 철부지 청소년들은 적응하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청소년들은 제2의 탄생기라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심한 몸살을 합니다. 호기심 때문에 많은 것을 경험하지만 그에 대처할 윤리성이 부족하여, 그들에게 성숙함을 기다린다는 것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성인들은 정도가 다른 자녀들을 학교에 맡겨놓고 당장 문제를 풀어내라고 성화입니다. 학교가 문제를 서툴게 푸는 듯하면 성인들은 자기들이 직무유기한 것까지 학교에 책임전가를 합니다. 성인들이 청소년들을 ‘좋은 놈’, ‘나쁜 놈’이라 양분해 놓고는, ‘나쁜 놈’으로 단정된 놈을 학교에서 퇴출시켜 달라며 그 책임을 전가할 뿐입니다. 그 ‘나쁜 놈’은 성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인데도 그런 청소년들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종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들은 청소년들이 담배와 술을 선택하면 즉시 비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동기를 부여한답시고 분노하기에 바쁜 자들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역할과 책임은 가끔 하극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것이 두려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역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은 성인에 비하여 그나마도 철부지들입니다. 그들은 툭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감정기복이 심해 부적응합니다. 성인들 때문에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자아 상실감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며, 꿈 많은 청소년 시절의 로맨스를 담기 전에 생의 좌절과 환멸을 경험하며 자살충동까지 갖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갖게 하고 그들의 가치와 목표를 최고로 성장시켜 줄 어른이 필요합니다. ‘문제아, 부적응아’라는 단어는 성인들이 그 책임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해 만들어 낸 허상의 단어들입니다. 만일 ‘나쁜 놈’을 문제아로 낙인찍는 데 그친다면, 그 성인은 살 수는 있겠으나 끝내 어른으로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철부지 청소년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교육시킬 진정한 어른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에게 단답형의 “해, 하지 마,”식 명령과 지시, 끊임없는 잔소리의 설교, 사랑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상처 주는 언어적 폭력, 즉 ‘엿장수나 해라.’라는 비난 따위가 청소년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다고 여기는 성인들은 청소년들에게 열등감만 키울 뿐입니다. 성인들이 교육적이라고 여기는 방법들은 분명 진정한 교육적 접근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큰 착각이며 오류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지식의 전달자이자, 생명의 조력자입니다. 청소년들과 끊임없이 함께하고 기다려주며 눈높이를 맞춰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청소년들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이 양성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황금률인 ‘사랑의 법’을 실천하는  어른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