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나의 리더십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326 | 작성일 : 2009년 5월 8일

                          지난 시절 경험한 리더십

 얼마 전에 『양치기 리더십』(케빈 리먼, 윌리엄 펜텍 저, 김영사, 2005)이라는 책을 음미하여 읽었다. 그 책에서는 월급 때문에 직장에서 자리에 연연하며 평안하게 지내려는 사람을 ‘직원’이라는 표현보다 ‘삯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국 직원은 삯군이라는 등식을 들어 리더는 직원 그 이상으로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학교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교사들을 채용해야 했는데, 그 일은 건물을 짓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학교 설립 초기에는 순수한 자원봉사자들도 많았지만 자원봉사자를 속에는 내심 삯군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사(人事)는 보다 더 냉정함을 원칙으로 정했음에도, 사람 볼 줄 모르는 나는 인정에 휘말려 원칙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때도 있었다. 주인의식을 지닌 사람을 뽑았다고 여겼지만 결국 삯군을 뽑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내쫓을 수도 없고 얼마나 오랫동안 후회를 했던지 지금도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인연이 되어 악연으로 끝났다면 좋으련만, 신앙인이라는 믿음 때문에 좋은 관계로 시작한 인연이 악연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공동체의  선을 위해 목자다운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축복이고 은혜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 사람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면접 때, 인간미가 넘쳐나고 그럴듯한 말솜씨가 넉넉하고 재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학생들을 제법 잘 섬길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여 공동체 구성원으로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영 아니었다. 자기의 역할과 책임은 뒤로하고 이해타산으로 얽혀 공동체에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가끔씩은 불안 심리의 증폭으로 불평을 늘어놓더니만 그 불평은 동료친구들 사이로 번져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있었다. 이런 교사를 만날 때, 리더는 분명한 결정을 내려야함에도 인지상정인지라 힘들어 할 때도 있다. 삯군의 세력이 커 가는데, 동료들은 내색도 못하고 엉거주춤 눈치만 보며 리더의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도 삯군의 힘이 결정적으로 자기 꾐에 빠져 더 이상 자기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을 때, 삯군은 리더를 찾아와서는 한 번만 봐 달라고 했다. 리더는 그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학교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세상에 약삭빠른 그는 리더에게 말이 먹히지 않자 동료들을 규합하여 끝까지 직원의 자리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리더는, “학생들에게나 공동체에게나 당신은 이익만 챙기는 삯군일 뿐이오.” 라고 재차 말했고, 그는 결국 직장을 떠났다.
  삯군은 아름다운 공동체의 목적을 훼손하고 불손한 마음으로 목적을 방해할 뿐이다. 만일 그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리더는 그와 함께 공동체를 떠날 각오를 하고서라도 그를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성실함이 결여된 삯군을 그 때 주저하지 않고 공동체에서 과감하게 퇴출시켰던 일이 십 년이 지나고서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은 생명을 다루는 공동체에게도 축복이요, 학생 개개인에게도 큰 축복이었다. 리더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도록 지지해 주어야 하며, 삯군 같은 구성원을 과감히 걸러내야 함이 리더의 몫이다. 자리에 연연하는 그래서 월급만 챙기는 삯군은 생명을 이루는 공동체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됨을 리더는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