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속의 부활을 꿈꾸며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95 | 작성일 : 2009년 6월 6일

십자가 속의 부활을 꿈꾸며
                                             
                                                양업고등학교(특성화 대안학교)
                                                    교장 윤병훈 신부

 수많은 생명들은 긴 겨울을 지내야 합니다. 비바람과 폭풍우라는 시련과 혼란, 아픔과 같은 긴 겨울을 지내야만, 아름다운 꽃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겨울을 지나야 생명이 된다.’는 진리는 하느님의 바라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죽으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바라심대로 오르지 고통과 직면하여 십자가를 품어 안으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 구원이라는 부활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은 것이다.”(요한11, 25-26)라고 하신 말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고통이 너무나 길고 험할 때면 믿음이 약해지고 한계 상황에 직면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라도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나는 폐교된 학교 건물을 매입하여 생명이 우글거리는 아름다운 학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빗나갔습니다. 지역민의 ‘대안학교’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우리의 뜻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쓰레기장이 들어온다더니 인간쓰레기 학교가 웬 말인가?” 라는 험한 말까지 들으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질 않았고 오리무중처럼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세 장소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무참히 우리의 계획이 묵살되면서 절망적인 시간이 꼭 3년을 지냈습니다.  학교 설립 허가는 득했음에도 좀처럼 삽질을 시작할 기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고통이라면 그만 계획을 접을까 보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께서는, “얘야, 너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제가 아니냐? 무엇을 겁내느냐. 용기를 내어 기도하며 사람들을 만나 거라.” 라며 충고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실 당시에 나는 사회성도 부족했고 세상과 맛서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계기로 ‘좋은 뜻만 갖고 시작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함을 접고, 두려움을 애써 버리면서 그들과 맞서기로 했습니다. 내게 좋은 뜻을 담아주신 하느님을 믿고, 그 뜻이 이루어 주시리라 믿으며,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에 직면하며 그 분께 온전히 맡겨드리고 살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계획에 완고함을 지닌 숱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해줘! 해줘! 저 양반 또 나타났네.” 그 일이 결정적으로 허락이 나고, 첫 삽을 뜨는 날, 축복의 비가 온종일 내린 그 날,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신기하게도 기억났습니다.
 그동안 겪은 고통의 십자가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고 좋은 열매를 보는 학교로 성장했습니다. 10년 전에 ‘쓰레기장에 비유될 인간쓰레기 학교’ 라 불리던 고통을 당당하게 맞이한 대가로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훌륭한 학교가 되었습니다. 인간 구원의 도구가 된 십자가를 당당히 품어 안을 때 부활의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우리는 매일의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확인하고 살아가기에, 우리에게 다가왔던 고통과 시련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행복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과 시련 덕분이었습니다. 학교는 수많은 은인들 덕분에 아름다운 숲을 이루며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도시의 학생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밤새껏 인쇄된 책을 대하며 공부한 것보다, 인쇄되지 않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으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며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감사하는 학교로 크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개교 10주년 기념으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는데, 또다시 아름다운 학교를 시샘이라도 하듯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이는 안주하고 싶은 우리에게 던진 고통의 선물이었으며, 지금은 고통이지만 이는 또 다른 성숙함을 예견하는 거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학교는 기존의 석산, 세 곳으로 둘러싸인 위험천만한 학교로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발파진동으로 건물이 흔들리고 분진과 소음으로 학습권과 생활권이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학교보다 먼저 자리잡고 있었기에 우리는 인내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바로 옆구리, 600미터 거리에 또 다른 토석채취허가가 나면서 학교는 본격적으로 위협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군의 허가는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허가권자의 권한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학교를 보호해 줄 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숲 속의 작은 학교, 청정지역에 생명의 알을 품고 훌륭한 생명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학교가 무지한 경제논리에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행정당국과 지역은 경제논리를 내세우고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학생들의 생명과 그들이 지니고 살 권리를 도무지도 생각 않고 이루어진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애야,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제가 무엇이 두렵니?” 또 어머니는 묵주를 잡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나와 교사들,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생존권과 학습권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굳혔을 때는, 어느 사이에 우리 학교 구성원들은 바위 같은 권력 앞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절망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또한 학교의 지역 주민들은 학교의 친구가 되어 주었지만, 조금 떨어진 마을과 면민들이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모습은, “두고 봐. 저 사람들이 외쳐봤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아마도 참패일거야!” 라며 우리를 조소하고 빈정거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지역민들이 학생들에게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언론이 도와주고 나섰습니다. 이를 보고 전국의 학부모가 뭉쳤습니다. 학생들을 시위현장으로 내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가로막고 있을 때, 나는 학생들이 현장 학습하러 사회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며 학교 밖으로 행군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우리는 집회신고를 마치고 법을 존중하며 오르지 영세하기 그지없는 작은 몸짓을 막강한 권력 앞에 내세웠습니다. 우리의 뜻이 관철되도록 시작한 우리들의 작은 힘은 의외로 많은 힘을 드러내도록 움직였습니다.
 수입을 챙기는 전문가를 앞질러 교수 전문가들이 우리 일을 도왔습니다. 난데없이 나타난 뜻있는 은인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분들은 권력을 지닌 세력이 허가를 합법화 시키려는 움직임을 꼼짝도 못하도록 견고한 답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외롭고 힘겨운 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행정당국은 세 번째 결심에서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얼싸 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께 찬미가를 읊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교장인 내가 우리 학생들에게 안겨준 선물 중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0 0 교통”을 향해 응원을 하고 싶습니다. ‘0 0 교통’ 김재수 대표님과 그의 회사 가족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서 붓을 들었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09년 봄에는 꽃길을 걷고 싶다.”고 한 대표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같은 꽃이라 해도 소금꽃 다음에 피는 꽃은 특히나 아름답습니다. 우리 구성원 모두가 소금꽃 다음에 피워 낸 웃음꽃이 우리의 미래가 되도록 살아갑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얼마나 어려울까? 이 일은 사측 없이 노동자만이 둘러 앉아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있으니 더 어려울 것입니다. 교통은 공익의 문제라고 하지만, 작금의 난처한 문제는 냉정하게 우리 구성원이 풀어내야 할 과제입니다. 그동안 사측이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으로 전환이 된 때부터 모든 문제가 내 문제가 되고 그 문제의 해법을 찾는 일은 큰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통을 겪은 것만도 어려웠는데, 또 다시 다르게 불거진 차고지 이전 문제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또 견디어 내야 합니까? 사측의 부채를 수백억 끌어안고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의 모든 경영을 맡으며 수개월씩 월급을 포기하고 오르지 회사를 살려내야 한다는 자구적 노력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언론 지상을 통해 대표와 구성원의 노력을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또 다시 넘어야 할 높은 산으로 드러난 차고지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 문제는 또 대표님과 가족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대표님과 구성원들이 지금 그 과제를 끌어안고 감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여러분의 외침을 외면하는 듯하지만, 당신이 말한 소금꽃 다음에 아름다운 세상이 온다는 것을 나도 믿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르지 우리가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어 낼 때, 우리를 방해하는 자들의 마음을 돌려 머지않아 “그렇게 하라!”고 기쁨을 말해줄 것입니다. 대표님이 끊임없이 회사를 대표해서 백팔 배를 올린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섬기고 따르는 그분을 믿고 대표와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0 0 교통’이라는 나무가 “세상에 잘 자라나렴.” 하며 늘 쓰다듬고 사제의 축복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인간 구원을 가져다주는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미구(未久)에 다가올 영광의 부활을 믿습니다. 대표님과 구성원 모두 모두 힘내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