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을 그리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30 | 작성일 : 2009년 9월 23일

                            큰 그림을 그리자.

  저출산 영향도 있겠지만 대도시 유치원에서의 ‘영어 열풍’으로 소규모 유치원들이 문을 닫는다고들 한다. 내가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을 때, 그 옆에 있던 성당 유치원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들어가기 어려웠다. 그 유치원은 예나 지금이나 원아들에게 특기교육도, 영어교육도 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요구에 시달릴 텐데도 여전히 확고한 교육철학을 고집하며, 몬테소리 교육과 자연친화적 생태교육, 종교적 심성과 창의적 감성을 길러주는 데 주력한다. 특히 이 유치원은 ‘부모 교육’을 중요시하여 부모의 무분별한 조급성을 조율해 준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이 유치원을 선망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원아들에게 바른 생활습관과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품성, 도덕적 가치관 등을 심어주는 전인교육을 실천하기 때문이었다. ‘유아기 때 꼭 필요한 인성교육을 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초등학교 생활이 확실히 다릅니다.’ 라는 칭찬을 선생님들로부터 듣는다는 부모들의 후문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원아교육의 확고한 교육철학이 이 유치원에 살아있는 것처럼 나는 공교육현장도 그럴 것이라는 믿고 있다. 물론 학교마다 달라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는가 하면, 사문화된 학교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후자일 경우가 많지 않나 여겨진다. 이는 평준화가 가져다준 획일화가 학교의 특색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각 학교가 갖는 고유한 교훈이 있었다. 학교입구의 돌 입상에 새겨진 빛나는 단어들, ‘정직, 근면, 성실, 사랑, 진리, 봉사, 절제’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그러한 단어들이 의미하는 교육의 큰 그림이 학력제고에 밀려 예쁘게 한쪽 구석에 자리만 잡고 있다. 누가 지금 학생들 마음속에 이런 빛나는 단어들을 담고 살려고 하겠는가. 심히 걱정이 된다.
 S대학의 심벌마크에는 “Veritas Lux Mea"라는 글귀가 라틴어로 새겨져있다. 이 뜻은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 대학이 지닌 교육철학이다. 그런데 과연 이 학교의 학생들은 이 훌륭한 교육철학으로 함축된 교육모토를 얼마나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갈까?  요즘의 교육은 부분의 교육과정에 치중하여 교육목표에 접근한 훌륭한 그림 한 편을 만들기도 전에 돌연변이 사회인을 탄생시키지는 않는가. 다시 말해, 전체의 큰 그림 없이 부분에만 급급하다 양성되는 대한민국의 일꾼들이다, 인생 전반에 걸쳐 ‘도대체, 왜?’라는 깊은 의미를 새겨 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매순간 조급하게만 수단을 끌어 안고 살자니,
삶의 여유라고는 전혀 없어 모두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걸 보면 교육이 정상이 아니다. 교육방법, 교육과정, 교육행정도 한 부분일 뿐 모두 큰 그림의 교육철학으로 집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모두들 교육을 통하여 잘된 작품을 만들어 내려고 고생인데 잘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유치원에서의 분별없는 영어교육열풍, 우리나라의 어린 유아들까지 어른들의 조급한 강요에 일찍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자라난다. 창의성은 바른 인성에서 비롯되며, 단계적인 지식의 성장에서 깊은 의미로 연결됨으로써 나오는 것이다. 현자들은 ‘지혜를 사랑했다’(철학=philosophy). 지혜는 지성과 감성의 종합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현자들은 세상 소리 이전의 하느님의 소리를 감성으로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과학적인 지식으로만 길들여진 사람은 ‘지식을 베틀에서 짜내듯’(知識) 상습적으로 조합하며 살아가기에, 마음으로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해 지혜를 만나지 못한 한낮 교만한 자로 남는다. 후자의 작품은 외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모호하고 조잡한 작품들일 뿐이다. 인간을 병들게 하여 파멸로 이끄는 절대지식처럼 보이는 과학적 지식들의 확장만이 과연 교육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의 교육이 ‘행복한 인간’을 지향하면서도 왜 많은 이들이 날마다 웃음을 잃고 정직하지 못하며 남을 속이는가. 얼마 전에 대도시 학교의 한 여학생 수재가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해서 앙갚음 하려고 교실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등을 흉기로 찔렀다는 뉴스를 접했다. 왜, 자라나는 청소년들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지식만 베틀에서 조합하느라 짜낸 작품이 따뜻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수단들만 무성히 자라 경쟁의식에서 불거진 문제이기에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래서 ‘교육의 부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교육은 목적을 담은 교육철학과 이를 완성하려는 부분들과 서로 협력하여 행복한 인간을 이룰 때만이 진정한 교육이 된다. 각 학교가 아이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는 교육철학의 큰 그림을 그려주는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어보자. 이것이 학교마다 피어날 때 진정한 교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