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가 곧 생명이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38 | 작성일 : 2010년 9월 4일


철학적 사고가 곧 생명이다.

 지난겨울, 한 농부가 우리학교를 찾아와서는, “제 자식, 여기 입학시키려고요. 아이를 대안학교에서 키우고 싶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말입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학교는 기꺼이 자녀를 선택해 주었고, 학교생활에 있어 학부모도 학생도 주도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얼마 전, 학부형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고, 나는 답례라도 하듯 단숨에 읽었는데 겉표지와 달리 내용이 감칠맛 났다. 이 책은 이시카와 다쿠지가 지은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무 농약, 무 비료 농법으로 긴 세월 건강한 사과나무를 키워낸 한 농부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였다. 이 농부의 고집스런 농법 때문에 사과나무는 생명위기를 맞았고, 가정경제는 파탄을 예고했다. 그러나 농부의 열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죽어가는 사과나무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며, 생명을 살리는 데 온 마음을 집중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산에 오른다. 그는 산에서 한 그루의 건강한 도토리 나무를 사과나무로 착각한다. 도토리 나무는 농약과 비료도 없이 건강히 자라 있었다. 그는 그 나무를 보고 자신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무 농약, 무 비료 농법대로 건강한 사과나무를 키워낼 수 있다는 희망을 찾게 된다. 이 순간의 일로 인고의 세월동안 한 우물을 팠던 고집스런 농부는, 확고한 농업철학을 갖게 되었고 이에 감격한다. 그의 끈질긴 농업철학의 결과 생명의 부활을 노래하고 고통 속에서 삶의 희열을 맛본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임을 배워가며 사과나무도 살리고 주변 생명도 살려냈다. 그 삶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생명이 되도록 큰 희망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생명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산과 강, 들판을 강제로 뒤집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생명들의 터전을 파헤치며 비료를 남용해야만 생명이 되는 줄로 여긴다. 인간생명과 더불어 공존하는 모든 생명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알아 가면 참 좋을 텐데…. 정치지도자들마저도 정치철학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창조주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잊은 채, 인간의 이익만 추구하는 얕은 생각은 횡포에 가깝고 폭력적이어서 모든 자연 생명이 신음하고 병약하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것은 이 책 속의 농부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남들이 일상적으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바보처럼’ 인내를 요구하는 생명의 길을 도전하고 선택한다. 그들은 산과 들, 그리고 강에 어우러져 사는 주변의 생명들까지 존중하여, 남들이 하는 대로 제초제, 맹독성 농약을 쳐서 주변의 해충과 익충을 죽이는 얕은 농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책을 전해준 학부형의 모습도 책 속의 농부의 모습을 닮았다. 학부형은 평상시 개량 한복 차림과 텁수룩한 수염을 길렀는데, 그 모습에서 학부형의 고집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런 면에서 그가 자녀를 우리학교에 입학시킨 것도 유관하다. 그 학부형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깊은 뜻을 모를 것이다. 그분이 지닌 농업철학이 자연을 억압하는 농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라면, 자녀에 대한 교육철학도 그러했을 것이다. 자녀는 아버지의 권유로 더 큰 자생력을 갖고 뿌리 깊은 건강한 인재가 되려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자연농법으로「기적의 사과」를 만들어 낸 집념의 농부처럼, 또 이와 비슷한 교육철학을 지닌 학부형을 본받아 우리도 사려 깊은 철학으로 한 우물을 팠으면 한다. 미성숙한 생명을 성숙한 생명이 되게 하기 위해 강제적인 방법을 버리고, 인간실존이 바라는 존중과 사랑의 농사법을 택하고 싶다. 이 노력은 더디지만 생명을 깊게 뿌리내리게 하고, 더 깊은 땅 속의 양분을 끌어 올리도록 하는 과정이 된다. 즉 자유로움과 올바른 선택이라는 교육적 바탕과 믿음과 신뢰, 사랑을 바탕 한 사고는 학생들을 뿌리 깊은 인재로 만들 것이다. 우직했던 책 속의 농부처럼 우리학교 교육도 한 우물을 팠던 결과, 향기 나고, 맛 나는 열매를 예견하는 멋진 꽃을 피우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졸업생들은 뿌리 깊은 사람으로, 향기 나는 인재로 자라난 것은, 죽어가는 사과나무에서 오랜 만에 흐드러진 꽃과 과일을 보고 기뻐하는 농부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기쁨이 있다. 무 농약, 무 비료라는 농업철학으로 기적의 사과를 만들어 낸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만들고 있다. 급하게 서두르고 약삭빠르게 세상을 쫒아 살지 않고 좀 더 바보 같이 사는 농부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