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이 같은 바보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94 | 작성일 : 2011년 2월 25일

                                똑똑이 같은 바보

  일 하다보면 공동체 속에 몇몇 똑똑한 사람을 만난다. 똑똑이는 이해타산관계에 능해 먼저 자기를 챙긴다. 혹 불이익이 생겨날까 우려를 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선수를 친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도,  일을 합리화시키려 노력하며 객관성을 흐려 놓는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목소리가 크다. 일의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어도 자기 속마음을 들킬까 봐 되레 큰소리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런 사람도 본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밤사이 누가 마음의 밭에 가라지를 뿌렸나 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 사랑이 남달라야 한다. 그런데 속으로 사랑해야 한다. 내 자식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이성을 잃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자식이 잘못을 했는데도 비겁하게 이를 감싸 안으려고 이성을 흐린다. ‘왜 내 자식 건드리나.’는 식이다. 이는 내가 믿는 종교를 험담하기라도 하면 상대에게 설득력을 갖고 대화하지 않고 발끈하는 그 모습 이상이다. 가끔 이런 똑똑한 사람들 때문에 좋은 기가 사라지고 학교교육은 혼란스럽다. 선생님들도 부모만큼 학생들을 사랑할 줄 알며, 학생이 잘못했을 때 교육을 위해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는 것뿐이다. 선생님은 생명이 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공동체의 선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자식이 잘못 했을 때 그 책임도 회피하며 학교를 삿대질한다. 이 삿대질로 인해 교육은 방해받고, 선생님들은 주춤한다. 이런 태도에 선생님들은 오히려 학생에 대한 열정도 식고 멈춘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다가 도 이런 태도에 학생이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처음 실시한 교원평가에 똑똑이 학부모 몇이서 익명으로 막말과 무례함을 서술했었다. 자기 자식에게 쏟은 정성에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숨죽이다가,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못한 경우이면 남이 자식에 대한 격려와 칭찬은 접고는 학교가 어용을 선발했다고 비아냥거리며 서술했다. 아무리 자식사랑이지만 어디 이런 태도가 성숙한 어른들의 태도인가. 남에 대한 칭찬과 배려에 속좁음 때문에 품격이 손상되고 주변은 혼란스럽게 된다. 그런 부모의 자녀들을 보면 학교에 대해 태도도 여전히 불손했다. 미숙한 어른들은 잘못된 자신을 속으로 숨기지만, 그런 자녀를 둔 아이들의 표정은 그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 학생의 표정을 식별하면 어떤가를 알아내기에 정확하다. 시간이 지나고 자기가 한 일을 놓고 결과가 좋지 않아 후회하지만, 원만하게 해결할 시간과 방법을 놓쳤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가 어떤가를 알 수가 있다. 자기가 의무로 해야 할 자녀교육에 대한 부족함을 학교에 맡겨 놓고는 자기 탓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고 남 탓만 한다. 학교에 미성숙한 자녀를 맡겨놓고 겸손되히 무릎 꿇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성을 냈다. 사실 교육의 대상이 학생이 아니라 정작 이런 학생을 맡겨놓은 학부모라야 한다. 교육을 통해 미성숙한 자녀는 성숙을 향해 변한다. 그러나 똑똑 이 같은 바보 학부모들은 구제불능이다. 학교에 대한 관심도, 자녀에 대한 역할과 책임도 하지 않는, 그래서 철저히 자기 생각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삶은 관념이 아니라, 현장으로의 투신임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어른의 삶은 분명 똑똑 이 같은 바보가 아니라 바보 같은 똑똑 이로 살아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소위 자칭 자기만 똑똑하다는 사람들, 그들은 진정 사는 것을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좋은 소리 못듣고 자신속의 가면에 들켜 온통 힘들고, 괴롭게 살아간다. 이런 모습은 똑똑 이로 자처한 바보들의 뒤엉킨 혼란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이해관계 보다는 타인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뛰어드는, 늘 개관적인 주장과 자기 것을 남에게 내어주며 좋은 것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건데, 3년을 잘 살았으면서도 똑똑이 같은 바보들은 못내 졸업식 행사에도 똑바로 서질 못했다. 그래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남기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헤어지는 시간에 멋진 자녀로 성장한 자녀의 모습 보며 그래도 선생님들에게 인사 한마디 있어야 했다. 어찌 이렇게 헤어질 수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나는 이들도 사랑해야 한다. 어디서건 만나면 그 때일 놓고 반듯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사실 나도 학생일 놓고 원칙만을 고집하며 팽팽히 맞섰음을 시인하며, 언젠가는 그 무뚝뚝함을 사과하고 싶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좋은 일 많이 하자며 살아갔었다. 그런데 때로는 서로가 똑똑한 바보들처럼 사느라, 용서 한마디 없이 좋은 것을 놓쳐버렸다. 조금은 어른들이 되어 서로가 부족한 바보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린 더 똑똑하고 행복한 졸업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헤어지기 싫어 엉엉 울고 돌아간 아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어른의 성숙한 마음 하고 헤어지는 학생들에게 축복의 장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 나누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