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박13일의 이동수업에 관련하여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38 | 작성일 : 2011년 2월 25일

                        12박 13일의 이동수업

                                생명의 철학

  농부는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동식물을 사육하거나 재배한다. 이는 농부의 삶이며 과제이며 목적이다. 더 나아가 인간생명의 농사인 교육은 교사농부의 몫이며 삶이자, 의무이고, 목적이다. 교육을 밖에서 바라보면서 얕은 지식정도로 쉽게들 이야기하지만, 교육현장에서 살아보라! 생명농사가 녹녹치 않다. 교육을 구체적으로 알기 전에는 자기 일처럼 다 피곤하고 고달프다고 빗대면 안 된다. 모든 생명 가꾸기는 관념으로 보면 낭만처럼 보이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다. 특히 인간생명은 끊임없이 자라고 움직인다. 생명은 눈길을 피하면 금방 시들고 영양실조가 되어 죽고 부패하며 악취를 풍긴다. 어느 삶이고 마찬가지지만 생명을 생성하고 자라게 하는 일은 끊임없는 돌봄이라는 성실성을 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농부는 긴장의 연속이다.
  먼저 재배를 생각해 보자. 농부는 겨울과 여름을 지나며 눈과 비, 바람에 생명이 극한 상황을 잘 견디도록 보살펴야 주어야 한다. 농부의 성실함은 겨우내 진행된다. 생명이 자랄 비옥한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봄이 오면 씨를 파종하고 생명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돌본다. 병충해를 예방하고, 비료를 공급해 주어야 하고, 수확 때는 정확한 때를 보아 거둬들여야 한다. 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다음 사육을 생각해 보자. 가축이 들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연상해 보라. 한 폭의 그림처럼 나도 농사에 뛰어들어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그러나 사육도 재배의 고충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육농부는 그 흔한 휴가가 없다. 가축을 돌보느라 농부는 밤낮없이 휴일도 잊은 채 축사에 매달린다. 양질의 먹이 준비며, 질병 예방과 치료, 청결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이 농부의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견디어 내야 한다. 엇베기 농사꾼에서 성숙한 농부가 될 때까지 생명을 돌보고 완성하는 과정을 접해보라. 저절로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농부는 농사의 전체를 알게 된 후, 감으로 농사를 지을 만큼 노하우가 쌓여간다. 여기서 농부의 영성이 생겨나게 된다. 비로소 그 농부는 생명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며 존중한다. 농업을 모두 다 파악할 때 철학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농부 철학’이라고 한다. 철학을 지닌 농부의 노하우는 해를 거듭하며 더욱 깊이 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단순농업에서 복합농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발전해 간다. 농부는 농부의 영성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재배와 사육을 넘어 교육을 생각해 보자. 부모의 삶의 의욕과 그에 따른 자식농사는 서로 상생한다. 부부가 살아갈 가치는 자식농사에 달렸다. 자식농사의 성패는 부모라는 농부와 교사농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부모나 교사가 농부철학을 갖느냐, 못 갖느냐 하는 것에 자녀의 미래가 달려있다. 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목적을 갖지 못하고 부분에만 매달려 자녀의 생명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지시, 명령, 간섭, 설교식 훈화, 언어적 폭력, 강력한 외적통제 등만을 자식농사의 수단으로 삽질만 하는 부모나 교사는 훌륭하지 못하다. 부모나 교사농부는 이런 삽질만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식의 생명이 인성과 감성, 그리고 차원 높은 생명 에너지인 영성에 의해 창의력이 자라나도록 도아주어야 한다. 지식과 이해, 응용의 관계를 단순기능에서 복합기능으로 연결시켜 미래를 위한 풍요로운 삶을 약속해 주어야 한다. 이런 철학을 지닌 어른들은 경이로운 감이 오고 자식을 감동케 할 수있다. 교사농부가 교육철학을 가지려면 재배와 사육의 과정도 살아야 하고 학생을 잘 교육하는 농사 일에도 충분한 경험이 쌓여야 한다. 우리 교사농부는 생명철학을 간직해야 한다.   

                    교육설계도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것들

  집을 지르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좋은 설계 없이 좋은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일 년 농사계획서가 마련되어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된 농사계획서는 풍요로운 농사를 예견한다. 자식농사인 교육이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성장과 성숙하기 위해서는 질 높은 교육계획서가 필요하다. 유능한 CEO일수록 일을 함께 이루어가야  할 계획서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목적을 향해 합심하여 일관되고 지속성을 지닐 때의 성공을 예견할 수 있다. 성공한다는 것은 목적과 과정이 서로 연결될 때만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많은 경우 목적과 목표가 서로 연결이 안 되어 살다보면 결과가 허실함을 보게 되고 후회한다. 살아 온 과정이 시간낭비이며 인생의 낭패를 보게 된다. 목적과 목표, 교육과정과 교육방법, 원리 등을 잘 구축하고 연결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적용할 때, 그때야 비로소 교육은 성공할 것이다.
  요즘 인성, 창의성 교육이란 단어가 화두이다. 화두가 된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까지의 교육이 교육설계도 없이 목표 없는 진학지도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교육설계도에 나타난 상하의연결과 튼튼한 기반조성, 무형의 풍부한 소프트웨어가 모아져 서로 밀접히 작용할 때 귀한 생명이 된다. 목적도 없이 진도만 나가다가 얻어낸 결과만을 갖고 살다가 ‘이것은 아니다.’ 라는 부적응에 부딪혀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성에 부딪힌다. 오늘의 교육이 철학도 없으며, 목적과 방법은 따로 놀고 있는 교육임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교육설계도 내용

  교육목적은 비록 추상적이지만 그 학교의 브랜드이다. 이 브랜드가 뚜렷해야 교육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가 있다. 어느 교육구성원이 학교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알고 있는가. 아마 대다수는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단위학교 교육계획서라는 책 속에는 교육목적과 목표가 실려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고 있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데 교육과정과 교육방법, 교육원리는 어디다가 적용을 시킬 것인지 연결성이 없어 우왕좌왕 하는데도 이를 시정하려 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신경 쓰려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여행을 간다면 이는 추상적인 목적이 된다. 여기서 진일보해서 어디를 갈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이는 목표가 될 것이다. 이 목표가 설정되면 사람들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다. 설렘이 일고 과정을 살피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원리를 찾아보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목적과 목표에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나간다는 것에 흥미가 있을 뿐이다. 결국 여행은 진도만 나갈 뿐 왜 이 일을 하고 돌아 왔는지, 어떤 소득이 있었는가에 대하여 상당히 막연해 지고 만다.
  요즘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일상적으로 들려주는 상투어가 있다. ‘그냥요.’ 참 한심스런 대답이다. 대학을 가는 것이 어디 수단이지 목적인가. 교육이 왜곡되다 보니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인지 학생들은 대학만 들어가고 보자는 심산이다. 부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기서부터 가정공동체의 고통이 시작되고 인생이 꼬여 들어간다. 10대에서 20대를 지나면서 진도만 챙긴 결과, 내가 이룬 업적이 맘에 들지 않아 되돌려 보고 싶지만, 시간은 그 사람이 그 꼬인 것을 되돌려줄 여유를 갖지 못한다. 진로를 잘 선택한 목적의 삶을 사람들은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고,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다급해지고 만다. 그런 다음 결과는 자살, 우울증에 시달리며 비참해짐을 보고 후회한다.
 
                                교육과정의 이해

  교육과정은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도구를 잘 사용하며 목적이라는 보석을 캐내며 그 기능을 다해간다. 검증된 지식은 매우 다양해서 그 다양한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인문학과 과학의 지식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어디 하나 소홀이 다룰 것이 아니다. 교양과목, 전공과목, 음악, 미술, 체육 모두가 살아가면서 소중함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에 오면서 선택교과로 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이 선택은 아주 중요해서 미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해서 막연하게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는 진로와 적성을 구체적으로 찾는 시기이며 자아를 완성하는 입문의 결정적 시기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이유가 이런 교육과정이 자기를 성장 시켜 줄 것 같아서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아무 선택의 이유 없이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인성교과로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킴을 목표로 정했다. 우리만의 특별한 교육과정이 있다.

 
                              인성교육 특성화 교육과정

  산악등반, 봉사활동, 현장체험학습, 청소년 성장프로그램, 가족관계, 노작, 종교 등의 교과는 국어, 영어, 수학과목처럼 우리학교의 특별하고 독특한 교과목이다. 교실에서 지내는 것을 버겁게 여기는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 교실에서 지루함을 겪고, 외적통제인 지시나 명령, 간섭 따위에 상처 받아 괴로워하며 견디기가 쉽지 않고 지식교과 성적이 바닥을 쳐서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학교에서 소외된다. 이들이 처음부터 교실을 싫어했던 학생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공부를 놓친 아이들, 사춘기 시절 달콤한 솜사탕 같은 이성교제에 빠져 지낸 학생들, 부모의 잦은 마찰로, 아니면 부모의 이혼 때문에 공부를 놓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이건 학교의 교육목표가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을 통해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이라면, 이 목표를 학교가 역할을 다할 때 그 책임을 다한다 하겠다. 일반적인 교육방법으로 채택되는 교사나 학부모의 외적통제는 오늘의 자유분방하려는 학생들에게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 흥미진진한 교육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통제의 현장인 학교교실이 싫다면 재미있는 학습현장은 없는 것일까? 경제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교실 밖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교실 밖에서 열심히 체험학습을 하다보면 그들도 공부의 필요성을 알게 될 터이고, 그 이유로 학생들은 더 많은 지식습득을 위해 교실로 다시 돌아 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교실로 돌아온다는 에너지가 바로 자신을 내적통제 하는 자발성과 자기 주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학습동력을 키워 주고자 학교가 학생들에게 적합한 인성교과 특성화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또한 산악등반, 봉사활동, 현장체험학습을 하나로 묶어 이동수업을 펼쳤다. 국내의 여러 곳에서의 이동수업, 해외에서의 중국, 일본, 네팔 이동수업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학원비라는 사교육비 대신 이동수업 프로그램에 투자를 한 것이었다.
  처음 마련한 이동수업장소로 ‘중국’을 선택했고 다음은 ‘일본’이었다. 최빈국과 선진국 사이에 서성이며 학생들에게 그들 역사, 문화, 지리, 경제, 종교 등을 만나게 했다. 산을 오르고 봉사활동도 하고 역사현장탐방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얻어낸 학습동력은 지식교과로 옮겨오고 무섭게 학교에 적응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신부님, 교육철학 바꾸지 마세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못내 떠나기가 아쉬운가 보다. 이 학교에 더 있게 해주세요. 3년 동안 불태운 장작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축제무대는 그 열기가 밤새도록 식지 않았다.  땀범벅으로 열기를 토해냈던 그들의 축제는 삶의 현장으로 연결되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수를 세 번씩 하며 대학의 질을 높여가며 명문대학의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을 보고, 행복을 위해 도전하는 이런 노력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마련해준 자발성 때문이었음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미국 CIA 요리학교를 찾아 나선 여학생이 인천국제공항 탑승 장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신부님, 교육철학 바꾸지 마세요.”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는데, 이는 학교 교육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캐나다 대학에 진학을 하며 홀로 서있는 여학생이 예쁘고, 일본 주오 법대에 들어가 국제법을 연구하며 틈틈이 스쿠버 다이빙에 미친 내성적인 여학생의 놀라운 변신, 미래의 조소학자로 태어날 홍대 미대의 학생, 성악가의 꿈을 간직하고 중앙대 성악과에 입학한 학생, 헬리콥터 정비학을 익혀 미래의 정비사로 살아갈 것이라는 행복을 꿈꾸는 학생, 성적은 바닥을 친 학생인데 지금은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행복해 하는 학생, 호주 멜버른 의대에서 본과에 진입 예쁜 신부와 결혼을 한 학생, 동국대 4년을 수석하고 공인 회계사가 된 멋진 학생,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나라의 간성이 된, 그래서 국내 가장 큰 군함인 독도함과 친구가 여학생, 야심찬 훌륭한 코치가 되겠다는 심리학 전공자, 철학이 재미있다며 미래의 철학교수를 꿈꾸며 흥미진진해 하는 여학생, 일본 동경 순심대학에서, 상지대학으로 교환학생이 되어 자긍심을 갖고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학생들, 우리 교육과정에서 자발성과 자기주도적인 학생상을 목적으로 길러낸 참신한 인재들이다. 

                                네팔이동수업

  중국이 변했다. 우리학생들이 최빈국 중국을 만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 10년 동안 중국에서 이동수업을 실시하면서 중국의 변화는 놀라웠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50%밖에 성공하고 있다는 소식처럼, 지금은 중국이란 장소가 이동수업으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반감한 이유도 있었다. 2010년 6월에 나는 새로운 이동수업 준비를 위해 네팔로 떠났었다. ‘인성과 창의성 교육으로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 학생상’ 구현을 목표로 최적지라는 생각을 했다. 최빈국에서 우리는 최고의 상위가치를 보게 될 것이고, 선진국 대열에서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하는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로 적당한 곳이라 생각되어졌다. 12박의 일정, 카트만두의 자유여행과 랑탕 지역의 등산이 프로그램의 전체였다.
  우리 학생들은 지리산 산악등반으로 족하지 왜 그곳까지 가야 하느냐는 반발도 있었다. 진행하는 선생님도 괴로운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들은 짐을 꾸렸고, 비행기를 타는 날 까지 선생님들을 괴롭혔다. 그런 학생들이 과연 12박의 일정에 무엇을 얻고 돌아왔는가가 무척 궁금해졌다. 여기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씩 들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