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신앙생활 성적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169 | 작성일 : 2011년 3월 5일

하얀 신앙생활 성적표

  인재를 선발하는 곳에서는 모두 지원자들에게 구비서류를 요구한다. 가톨릭과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본당신부 추천서와 교적이 요구된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찾아와서는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얼마 전 천주교 타 교구 법인인 고등학교에서 ○○과목 정교사 1명 모집광고가 있었다. 한 지원자가 부모와 함께 찾아와서는 나에게 추천서 부탁을 했다. 나는 그 부모를 잘 알고 있었다. 부모는 명문대학 교수이며, 열성적인 학구파였고, 신앙생활과 교회활동에 적극적인 분들이다. 지원자도 부모를 닮아 명문대 출신으로, 초등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꾸준히 주일학교 생활을 했고, 대학생활 시절에도 주일학교 교사와 청소년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품격을 높이며 성숙해갔다. 그의 ‘신앙 성적표’는 그린(green) 색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장교 제대 후, 임용고시 준비로 노량진 입시 촌에서 지내며 세 번 고배의 마실 때에도 신앙생활을 놓지 않았다. 나는 지원자에게 강력한 추천서를 준비해 주었다. 추천서를 받아들고는 힘든 경력 속에 사회를 알아가는 말을 했다. “신부님, 모든 일이 만만치 않네요. **:1이랍니다.” 그러나 얼마 후,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1명의 자리에 그가 선택된 것이다.
  얼마 전 우리 학교도 교사를 선발했다. 우리도 천주교 신자인 인재를 찾고 있었다. 모집공고가 나자 즉시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부님, 잘 부탁합니다. 신자입니다.” 서류를 살펴보는 순간, 나는 지원자의 ‘하얀 신앙생활 성적표’를 보았고, 그를 서류전형에서 불합격시켰다. 추천서에는 안간힘을 써서 추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원자는 신앙생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그 학교에 임용된다면 열심히 하겠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 부모도 하얀 신앙생활이었다. 신자인 부모는 신앙의 모범을 자녀에게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도 부모는 행동이 따른 믿음을 자녀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부모도, 미성숙한 자녀에게도 하느님 나라는 건설되지 못했다. 인재로 선발되어 귀한 생명을 맡을 만한 자격조건이 미달이었다.
  신자인 부모들이 자녀들의 공부에만 신경을 쓰지, 자녀가 혹 성당에서 지내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려면 신앙생활도 잘해야 한다는 함수관계가 있기에, 두 요소가 잘 연결될 경우의 자녀는 뭔가 달라도 다르게 성장해 감을 본다. 그들은 구체적인 신앙생활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알고 있기에, 바르게 성장해 가고 인생목표도 또렷하다. 현명한 부모는 공부만을 위해 자녀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장한 후에도 자발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대학 수시 모집 철이 되면 학생들은 나에게 찾아와 추천서를 써달라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여과 없이 학생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서술한다. 추천서를 작성하고 싶은 정도를 1에서 10의 숫자로 표현해 볼 때, 학생에 따라 ‘10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5정도로 추천한다.’ ‘1정도로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다.’라고 정확히 쓰고 있다. 학부모가 들으면 서운할 것이다. 그러나 내 학생, 내 제자이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디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거짓으로 서술하는가. 학생을 잘못 추천하면, 추천자를 신뢰치 않게 되며, 학교 후배들이 골탕 먹는다.
  요즘은 대학 입학이든, 회사입사든 많은 곳에서 추천서를 요구한다. 추천서를 써주는 입장에서 볼 때, 내 자신이 신자이면서 ‘하얀 신앙생활 성적표’를 제시해서 자신을 초라하게 보이지는 않는지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내 삶이 전혀 부끄럼이 없다면, 추천서를 어느 누구를 마다하겠는가. 필요에 의해 신뢰가 가는 추천서를 얻어내려면 ‘하얀 신앙 성적표’가 아니라, ‘그린 신앙 성적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 년 후에 학생들이 입사건, 입학이건 여러 일로 나에게 추천서를 받으러 올 것이다. 그린 신앙 성적표를 지닌 당당한 지원자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