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들의 반란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250 | 작성일 : 2011년 11월 1일

                                  樂童들의 반란

 우리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방과 후에 면 소재지를 찾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다. 학생들은 몽고,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찾아 온 이주 신부들로 생겨난 2세 자녀들을 만난다. 한국어에 서툰 엄마들이 자녀 교육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그들 자녀들 교육에 멘토의 역할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시간을 맞추어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맞이해주었다. 벌써 몇 달 사이 멘토와 멘티로 맺어진 사이는 나도 너도 서로 열애중이었나 보다. 우리 학생들이 봉사 가는 날이면 아이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기다려졌고,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선생님을 만난다는 기쁨에 손꼽아 기다려 한 주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학생들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할 일이 급히 생겨났고, 이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아무 연락도 없이 봉사활동에 결근을 했다. 못 가는 이유를 알려 주는 것이 존중과 배려라는 마음임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주간이 지났다. 우리 학생들은 아이들이 여전히 반겨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로 그들을 만났지만, 아이들은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인사조차 하지 않고, 예전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며, 자기들을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어버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은, 난감해하면서 그들을 달래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통도 해보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했다. 우리 학생들이 아이들을 위해 시간 내어 달려갔건만, 시큰둥한 아이들의 태도는 우리 학생들을 불쾌하기까지 만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학생들은 함께 모여 아이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하여 의견을 모았지만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반갑게 맞을 준비를 하고자 도우미를 청했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봉사 장소로 갔다. 이게 웬일일까? 지난주와 태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껑충껑충 뛰며 우리 학생들에게 안기며 품안으로 들어와 응석도 부리고 기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우미도 필요 없게 되었고 다시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재미있게 한글을 가르쳤다. 지난주에는 아이들이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우리 학생들이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 아이가, “지난주에 그랬던 것은 선생님(우리 학생들)들이 아무 연락도 없이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무척 보고 싶었어요. 화가 났고요.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골탕을 먹이기로 우리가 짰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아이들이 지난 중에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어른이고 청소년들이고 아이들이고 심통을 부리는 이유가 같다는 생각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심통밖에 받을 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태도에 은근히 통쾌했다. 어린 아이들이 우리 학생들에게 복수라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는 마음을 아이들이 일깨워 준 일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심통을 자주 본다. 자신의 바람을 무시한 부모나 성생님에게 보여주는 반응이 심통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반항하며, 부적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상대로 하여금 힘들다는 자기 생각 밖에 못하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 존중과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만난다. 언제나 인간관계에 있어 나 중심이 아닌, 상대를 중심에 두고 상대를 어떻게 해줄까를 먼저 생각한다면, 더 끈끈하고 사랑 깊은 관계를 유지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