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부활이 곧 내 부활이어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46 | 작성일 : 2012년 3월 28일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내 부활이어야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풍요로운 생명이 되게 하는 일(요한 3,16)이며, 이로써 인류 구원에 협력하는 일이다. 나는 1학년 학생들과 매년 ‘네팔’로 해외이동수업을 떠난다. 이 목적은 “세상보기”를 통하여 학생들을 올바른 생명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다소 생소해서 힘든 수업이지만, 이러한 힘든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생의 의욕을 불어넣고, 공부의 필요성을 알게 하여,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미래와 세계를 열어가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재작년 네팔의 랑탕(Langtang,7225미터) 전진 기지인 4천 고지를 등정했고, 작년에는 안나푸르나를 향한 산행을 한 바 있다.
  “산에는 왜 오릅니까? 내려올 것인데.”, “공부는 왜 합니까? 써 먹을 데도 없는데.” 이는 철부지들의 우문(愚問)이며 우답(愚答)이다. 그런 철부지들이 산악등반을 하는 과정에서 등반을 가로막는 마음 속의 높은 산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 높은 산은 자신을 자학하며 실망으로 몰아가는 산으로, 생명의 성장을 방해한다. 이런 부정적인 이유로 학생들은 삶의 목표도, 그 목표를 향한 과정과 방법도 전혀 없이 귀한 시간만 축냈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싸워가며 높은 산을 향해 걸었고, 또 다른 마음의 산을 극복했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온 한 학생이, “아버지, 저 또 네팔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 내면의 변화를 감지하고는, “아들아, 왜, 또 가기 싫다는 그 길을 다시 가려고 하느냐?” 하자, 아들은, “제가 산에 다시 오르고자 하는 것은, 저에게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그 결과 삶의 활력을 찾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산악등반을 통해 목적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된 것이었다. 그들 내심의 변화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스스로 없앴다는 변화이며, 지금부터 누군가의 등대, 누군가의 지도(地圖)가 되어 살겠다는 놀라운 변화였다. 이는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이런 변화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비롯된 변화임을 뜻한다.
  나는 우리 학생들의 변화를 보고 오늘 복음말씀 속의 ‘마리아 막달레나’를 생각했다.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9.1)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어두움이 남아있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을 찾았을 때, 자신 안에 있던 가면과 허울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빈 무덤만 보게 되었다. 막달레나는 그 순간 진실 된 여인이요, 아름다운 내면을 하고 있다. 이런 내면의 변화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볼 수 있었고, 자신이 살아가면서 생겨난 어둠을 완전히 벗겨냄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을 정확히 보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나와 밀접히 관계성을 지닐 때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내 부활이 되고, 부활의 신비는 구체적으로 내 안에서 더욱 생생해 진다.
  학생들이 산악등반에서 자신 안에 있는 높은 산을 치워 냄으로서 성숙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정화 노력으로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적 변화체험이야말로 예수님의 부활이 참되다는 증언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임을 똑똑히 고백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