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듯이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498 | 작성일 : 2012년 3월 28일


하느님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듯이

  나는 학교설립부터 학생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그들이 그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건, 그들 스스로 살아가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어른이 생각하는 자유는 질적으로 달랐었다. 그래서 늘 어른과 학생들 사이는 관계가 불편했다. 우리는 그 수준 높은 ‘자유’를 학생들에게 주고는 또 강요하며 틀 속에 집어넣으려 했고, 우리가 어른의 언어로 늘 상 학생들에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른의 언어는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 노력은 전혀 먹히지 않았으며, 그럴 때면 우리는 그 학생을 나쁜 학생으로 단정 지어 미워하고 원망하며 네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했었다. 그것만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는 우리들의 무지였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말씀해 주셨음을, 그래서 무지한 인간에게 그 높으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당신 권능을 인간이 빨리 눈치 채서 알아듣도록 인간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행동 안에 머무르면, 나의 참된 제자가 되고,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이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학생들의 언어로 학생들에게 접근했다.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지만, 차츰 교사와 학생이 서로 소통하게 되었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단계적으로 회복되었다. 예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 중에 “낮아져야 한다,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도 철이 없어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고, 인간은 그 말씀을 하느님의 바라심대로 빠르게 성숙하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께서 기다려준 덕분에 우리는 그 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학생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말해주어야 한다.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하며 함께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어른의 수준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주어야 한다는 것이 낮아져야 하고 섬긴다는 의미였다.
  한 생명이 진화하듯 학교도 많이 진화했다. 개교 15주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학생들의 표정에서 진정한 ‘자유’를 보게 된다. 개교 초에는 경직된 얼굴, 어두운 얼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이런 시간이 올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인데 큰 축복이고 은혜로움이 아닐 수 없다. 교사가 끊임없이 학생의 언어로 말해주자, 학생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언인가를 알아갔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화된 자유의 의미를 그들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선물한 ‘자유’가 지금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준 동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는 것은, 육안으로 금방 감지되지 않았지만, 영안으로 보니 우리 학생들의 생명이 끊임없이 자라고 있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를 진실 되게 가르쳐준 스승 예수님을 나는 오늘도 사랑하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