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수선화처럼 부활의 생명으로 피어나기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306 | 작성일 : 2012년 4월 13일

예쁜 수선화처럼 부활의 생명으로 피어나기를

  입학식이 있는 날이면, 나는 입학생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려 화원에 들린다. 학생 수만큼 봄의 전령인 ‘수선화’를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입학생 한 명 한명에게 수선화를 선물했고, 학생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감동받는 느낌이었다.
  입학생들은 한동안 꽃을 바라보았고, 꽃이 질 무렵에 각자 학교 동산 양지바른 곳에 꽃을 심었다. 이렇게 꽃을 선물하는 이유는, 입학생들이 양업에서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하는 뜻이 담겨 있다. 학생들이 꽃을 심은 지도 제법 여러 해 되었나 보다. 매년 부활이 가까워 오면 양업 동산은 봄의 전령인 수선화로 가득하다.
  학생들이 식목일에 나무에 거름을 주다가 한 학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 꽃이 내가 작년에 심어놓은 수선화인데, 참 예쁘게 피어났네.” 그러자 동료들도 수선화를 가리키며 “이것은 내가 심은 건데.”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수선화를 심었을 때는 과연 제대로 뿌리내리고 살아갈까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그런데 제법 실한 모습을 하고 봄 날에 선을 보인 것은 학생들에게 큰 기쁨이었나 보다.
 입학하고 3년을 철없이 지내던 한 학생이 졸업 후에 건강하게 되어 학교를 찾아 왔었다. “신부님, 학교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너무 오고 싶었습니다.” 학생은 학교정원이며 시설들을 두루 살피고 다녔다. 학교 시설이 너무 좋아졌다고 말을 하고는, 화단에 곱게 핀 수선화를 보았던지 “신부님, 제가 심어놓은 수선화가 예쁘게 피어있네요.” 나는 그 학생을 바라보고는 “자네도 제법 철이 들어 예쁘게 피어났네.” 그리고는 함께 웃었다.
  2012년 입학생들은 학교 언덕 ‘하늘계단’이라는 양지바른 곳 양 옆에 ‘수선화’를 심었다. 아직 땅에 익숙지 않은 듯 축 늘어진 수선화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부활의 생명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이 심어 놓은 생명이 세찬 바람과 찬 서리를 견뎌 내고 있었다.
  한 입학생이 입학식을 마치고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이유는 공동체 생활 부적응이다. 학생이 자신을 집에 숨겼다. 학교는 그 학생을 사랑으로 드높이고 싶었지만, 학생은 일찍이 두려움에 겁먹고 떠나간 것이다. 결국 자신이 만든 부정의 힘 때문에 긍정으로 향하는 마음에 빗장을 찔렀다. 부모는 어쩔 수 없다며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똑 같은 상황의 한 학생이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상황이 달랐다. 이 학생도 입학 후 집으로 돌아갔었다. 장기결석이었지만 “동료들이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요.”라며 소식을 전해 왔고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성 목요일 만찬 미사에 나타나, 성체를 모시고 자리로 돌아가며 동료들을 향해 손짓하며 환하게 인사를 나누는 거였다. 동료들도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학생도 역시 부적응했지만 부정의 힘보다 긍정의 힘이 더 컸다. 스스로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있었다. 부활의 생명은 죽음 뒤에 오는 영광이라면, 이 학생은 죽음 같은 부적응을 박차고 일어나 진정한 생명이 되기 위해 스스로 찬바람과 찬 서리를 견디어 내기로 했다. 나는 이 학생을 보며, 그 학생이 심어 놓은 수선화가 멋진 향기를 뿜어내는 날이 오면 이 학생도 건강한 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를 향한 기도를 했다.
  여기 양업 동산은 부활의 생명을 위해 마련된 ‘사랑의 학교, 하느님의 학교’이다. 이 학교에서 이 학생과 입학생 모두는 야생화처럼 적응하며 건강하게 자라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