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형 제자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488 | 작성일 : 2012년 5월 14일

  대기만성형의 제자들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월 중순에 캐나다 밴쿠버로 공부를 떠납니다. 이곳에 가면 3년쯤에나 지나 돌아 올 예정입니다. 외국에 가게 된 계기는 배움이란 끝이 없다고 생각했고, 학식과 견문을 넓히는 공간이 더 넓게 필요하다 여겼습니다. 왜 어릴 때는 이렇게 못 살았을까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저에게 ‘늦었다고 여겼을 때가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을 하네요. 저는 제 꿈을 실현하려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저를 지켜 봐주십시오. 그리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제 목표를 향해 달려 승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자 수속과 비행기가 정해지면 그 때쯤 인사 올리러 가겠습니다.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시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학생은 7년 전에 졸업한 제5기 졸업생이다.
 1학년 때는 내성적 성격에 말수도 적고 기숙사의 공동체 생활이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학교를 포기하려고 밖으로 도망쳤던 학생이다. 그 때마다 담임은 이 학생을 용케도 붙잡아 학교로 데려오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힘든 학교생활 1년을 지내고, 2,3학년으로 진급할 때는 점차적으로 안정을 되찾아 갔다. 3학년 때는 제법 성숙하게 자라난 자신을 보고 뿌듯해 했고, 밝은 표정이 되어 졸업 할 수 있었다. 성적은 ‘양가(良可)집 도련님’처럼 바닥신세였다. 그래도 대학에 진학했고, 4년 동안 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생활도 전공에는 그리 관심이 없고 사회생활을 익혀가며 알바하며 지냈다고 했다. 군대 생활 중 제법 철이 들었고, 인생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단다. 지금은 경영 관리자로의 수업을 받고 싶어 한다. 오늘의 그는 “양업이 저에게 ‘자발성과 자기 주도성’을 신장시켜 주었어요.”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너무 내성적이고, 착해 빠져 기가 센 선배들과 동료들 속에 시달렸던 심리적 압박, 스트레스로 늘 밥이 되어 생활하느라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선 덕분이었다.
  이 학생은 졸업 후에도 모교를 꾸준히 방문했다. 군 입대며, 제대를 하고도 방문이 이어졌다. 모교가 마음의 고향처럼 그립다고 했다. 행복을 저에게 새겨주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감 있고, 주관과 목표가 뚜렷해 어른으로 변화되어 있다.
  이 학생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 부모는 아들을 끊임없이 믿어주고 기다려주었다. 아들이 힘들어 할 때라도, 잘 설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살펴준 부모님이 계셨다. 그래서 그가 닫힌 숨통을 열을 수가 있었고, 답답함을 풀어갈 수가 있었다고 했다.
  이제 그는  꿈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청년기를 준비하고 있다. 늦둥이로 철이 들어 세계를 향해 웅비하려 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 늦었지만 나는 그가 해 낼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나도 철부지 시절, 그와 같은 힘든 시절을 지나며 마라톤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학교가 잡아주고, 부모님이 믿어주고 사랑한 덕분이다. 대기만성형인 자네의 또 다른 시작은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나는 자네가 꼭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믿는다. 나도 자네를 위해 힘을 보태며 응원하겠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