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언어로 아이들을 대해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733 | 작성일 : 2012년 9월 4일

긍정의 언어로 아이들을 대해야

  요즘 부쩍 상담을 하려는 학부모들로 학교가 북적인다. 부모는 자녀교육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실감한다. 다음은 중학교 3학년의 한 학생의 이야기다.
  중 1학년까지 공부도 잘하고 총명한 아이였다. 학년이 오르면서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고 성적이 급강하했다. 자동차 설계사인 아버지는 빈틈없고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쩌다 만나는 아버지는 성적이 뚝 떨어진 아들을 보게 되었다. 마음을 일거주지 못한 아버지는 늘  “동생만도 못한 놈!”이라고 비난했다. 아들 수준이 아버지의 말을 어찌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완벽형의 아버지와 징검다리를 두세 개 정도는 훌쩍 뛰어넘고 다니는 아들 사이에서, 상처는 커가고 거리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습관적 반복이 싫고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일상의 잔소리는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간섭과 통제는 자녀를 가정 밖으로 내 몰았고, 또래집단과 어울리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큰일 났다 싶어 상담하려 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상담 자리에서 “이 아이가 무기력합니다.”하며 아이 탓만 했다. 보호자로 자녀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기다려주며 독립심을 키워줘야 하는 건데, 자녀를 소유물인양 착각하고 아들을 급조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아버지의 역할 때문이었다.
  이 아들은 성당에서 ‘복사’를 했다. 초등 3학년부터 중 2까지 충실한 복사였다. 직책이 복사단장이었다. 그런데 경건한 미사 전례 중, 그 아이가 깜박 조는 바람에 중요한 일을 놓쳤다. 미안해하는 복사에게 주례사제가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복사 때려치워라!” 상심한 아이는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그러나 신부님은 저에게 “때려 치라!”고 명령했어요. 지금까지의 복사생활이 순간 무너져 내렸어요. 나의 신앙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신부님도 싫고, 성당 나가기 싫어요.” 라고 말했다.
  이 학생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성적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다니던 학교로부터 타 학교로 전출통보를 받았다. 어느 중학교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신심 깊다는(?) 부모님 덕분에 가톨릭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 간 그 학생은 여전히 그 학교에서도 말썽을 피웠다. 학생은 그 학교의 교감선생님에게 불려갔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이 “과일바구니에 과일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썩었단다. 그냥 내버려 두면 다른 과일이 어떻게 되겠니?” 자기 이야기를 빗대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 학생은 즉답을 피하려다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다른 과일도 썩겠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바로 그 썩은 과일이 너야. 이놈아! 어렵게 전학을 받아 주었더니 보여주는 것이 이 모양이냐. 다른 곳으로 떠나거라.”라며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아이는 힘없이 집에 와서 엄마에게 “가톨릭학교가 일반학교보다 더 못한 학교야.”라고 했다.
  아버지와 신부님 그리고 가톨릭학교의 선생님에까지 그 학생을 비난함으로써, 아이는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하고 소외감과 커가는 열등감으로 답답하게 지내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며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가. 아버지에게 “집에 가거들랑 아들을 지금과 다르게 비난 대신 포옹해 주세요.”라고 했다. 가정과 학교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런 부정적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