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죽겠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453 | 작성일 : 2004년 8월 24일

요즘 우리는 “더워서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배고파 죽겠다, 추워서 죽겠다, 힘들어서 죽겠다...” 그러다 정말 죽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콩밭에서 일하던 할머니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해 죽었고, 산책을 나간 할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길로 가셨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그런데 금년에는 더위만 찾아다닌 꼴이 되었다. 교사연수를 위해 움직였던 도시들, 광도, 대판, 동경에서의 39.5도 행진에서 단련을 받고 돌아와서는 또 다른 곳에서 여전히 더위 한복판만을 찾아 살고 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친척들도 올해는 그냥 지내고, 내년에는 꼭 에어컨을 구입하겠다는 다짐이 그 어느 해보다 대단하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무더위에 죽지 않고 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보양백숙을 먹고, 참숯 벌겋게 달궈놓고 모래밭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모습이란 역시 대단하다. 살기 위한 전략이겠지. 우리가 방문했던 동경 근처의 川崎市 高津區 下作延에 위치한 학교는 우리의 내방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피자를 전날부터 준비했다고 들었다. 불볕에서 교사와 학생 전체가 즐거운 낮을 하고 불가에서 땀을 흘려가며 잘 버무린 피자 반죽을 익히고는 땀과 사랑의 결정인 피자를 식탁에 올리는 모습에서 우리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불볕더위는 식고 푹 꺼져버린 배에서 식욕이 돋았다. 참으로 행복했던 기억이다. 어찌되었건 집 떠난 신세가 고생이다. 아무리 대궐 같은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고 풍경이 아름다워 취해보지만, 돌아온 잠자리로 내 몸 하나 누울 자리면 족하다는 것 외에는 기억에 없다. ‘끌고 다녔던 짐 보따리를 풀며 훌훌 벗고 망중한을 즐기는 집이 있으면 되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그 거추장스럽고 더워만 보이는 사치스런 느낌의 군더더기들이 괜히 얄미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침대에 지친 몸을 맡기는 순간, 그제서야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지난 시간들 돌아보며 멋이란 이런 거구나 하며 즐거워진다.
  언젠가 광주 신학교 때의 5.18이 기억난다. 신학생들 대부분이 염병에 걸리고 몇 명은 장기 치료에 돌입했는데 그 중에 나도 끼여 있었다. 40도를 웃돌 때마다 신비의 명약을 투약하며 1도를 낮추며 견디던 시절을 생각해냈다. 36.5도에서 1도만 상승해도 견디기 어려운데 40도를 늘 간직하던 기억이 나니...  염병은 결코 걸리지 말아야지 하고 지금도 그 악몽에 소스라친다. 공부가 통할 수 없는 여름, 책 한권 꺼내놓고는 독서 삼매경에도 계획이 있었지만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을 생각해서 부하를 최대한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조석으로 찬바람을 낳는 모양이다. 밤 9시가 되서야 칠흑 같은 산책로를 나섰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고 있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난다. 느낌이 시원하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올 여름을 이렇게 표현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정성껏 살았다. “교육, 고민이다!”라는 주제를 놓고 어떻게 하면 이 고민을 풀 수 있을까 고민하고 지냈다. 이것이 무더위를 피해서 갈 수 있었던 답이었던 것이다. 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시지요. 또 긴장하고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있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