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동수업과 산악등반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056 | 작성일 : 2004년 10월 8일

9월 16일부터 23일까지 보름여 동안 학교 전체가 1학년은 중국으로, 2.3학년은 지리산으로 이동을 했다. 시시각각 일정을 보고 받으며 끝까지 잘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잘만 돌아 오거라." 기도가 절로 되었다. 그들 일행은 정확한 날에 다 돌아왔고 즐거운 추석연휴에 들어갈 수 있었다. 1학년 이동수업 책임자인 교감은 입술이 다 부르터 돌아와 인솔이 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자기들끼리 술 먹고 퍼졌다는 얘기와 감자줍기 봉사에 뺀둥거리며 약을 올렸다는 것, 북경에서는 몇몇이서 일탈하여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일부의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인천을 출발하여 심양도착, 열차로의 13시간 이동 후, 연길에 도착, 항일투쟁 역사의 현장답사와 북한 땅 바라보기, 북한 돕기 감자 캐기, 깊은 가을로 채색된 백두산 등정과 천지에서의 시간, 살레시오 수도회의 연길합작 기술학교 방문과 그곳 학생들과의 축구, 농구경기, 그리고 장기자랑, 초대된 만찬, 곧바로 이어진 연길에서 비행기로의 북경 이동, 북경에서의 문화체험 등 빈틈없는 일정 속에서 무사히 마쳤다는 좋은 평가를 보고 받았다. 떠나기 전 많은 시간 선생님들이 준비한 O.T.. 일정이 달라 각기 도른 목적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준비를 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의 성향 상 끈질긴 도전과 관찰, 목적에 대한 접근 등 학습의욕이 낮을 거란 예상을 했었는데, 교사의 평가, 학생들의 평가는 장시간 계속되었으며 좋은 평을 내어놓으며 부족한 점은 더 보강해서 내년 계획을 세우겠다고 각오하였다.

2.3학년 산악등반은 지리산 종주였다. 본부 조에서 있었던 나는 시작하는 날 공무로 늦게 지리산 온천 리조트에 도착을 했다. 때 아닌 비가 세차게 뿌리고 있었다. 몇몇 조가 산장을 향해 등산을 서두르고 있을 것임을 계획서를 보고 파악하고 있었다. 잘들 산행을 할까 걱정이었는데 간간히 상황이 접수되었다. 몇몇 학생이 비를 핑계 삼아 종주를 포기하고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과, 심야에 비를 만나 길을 잃고 험한 한을 헤매다 하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을 본부 조에서 맡기로 했다. 파행운행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지리산 등성이에 자리 잡은 산장 대피소에 잘 도착해서 잠을 준비하며 건강하게 일정을 마쳤다는 소식이 속속 접수되었다. 이렇게 종주를 한 학생들은 3박4일의 종주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추석연휴에 들어갔다. 벌써 훌쩍 큰 것인가? 예전 같으면 하산해서 술타령을 했을 법도 한데 그런 일이 한 건도 없었다니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었다. 열성적으로 임했던 대부분의 학생들의 산행 보고서엔 '내 의지를 키워준 곳, 다음에 온다면 지리산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산 같은 마음이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고, 늘 의욕 없이 건성으로 넘어가는 학생들 일부는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다. 한번으로 족하다. 산이 무섭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다." 라고 쓰여 있었다. 어쨌든 어렵다는 학습 보고서이지만 먼 훗날, 그들도 오늘의 지긋지긋한 산행을 삶의 동력으로 꺼내리라. 어른들이 부정적이면 아이들도 부정적이었다.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고, 억지로 남에 끌려 다니자니 진도가 없고, 진도를 나가자니 용기가 나질 않고, 관찰력과 학습의욕을 갖고자 해도 지능에 문제가 생겨나고.... 어쩌면 그들은 잘 해도, 잘 하려해도 사랑하고 칭찬해 줄 사람이 없어 사랑받기 위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보면 많이 속상하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손에 손을 맞잡고 거친 파도 산이라면..." 또 살아보자. 모든 일정을 이끌어 준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